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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E: 넌> 2021 프로젝트 보기/칼럼, 좌담

우리는 앞으로도 모르겠지만 - 정지원

2021. 11. 28.

우리는 앞으로도 모르겠지만


글쓴이: 정지원(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활동가)

 

 

안전한 공간을 찾아서

 

위티에서의 활동은 안전한 공간에 대한 욕구에서 시작되었다.

 

여성 청소년으로 살아가며 내게 주어진 공간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다. 청소년은 학교와 가정에 속한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 밖의 공간을 선택하기 어려웠고, 노동과 정치 활동도 제한되었다. 내가 속한 공간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지만 학교 밖의 공동체에 대한 정보는 부재했다.

 

안전한 공간이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청소년의 접근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공간도 많지만, 공간에 물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더라도 공간을 구성하는 공동체에서 환대받지 못하거나 자신의 감각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그 공간을 안전하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나에게는 물리적인 장소보다 공간을 구성하는 사람들과 공동체 문화가 더 큰 의미를 가졌다.

 

내게 주어진 공간은 안전하지도 평등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나는 내 몸을 검사받는 일에 익숙했다. 머리카락과 치마, 손톱의 길이부터 속바지와 스타킹 색깔까지 교칙에 어긋나지 않는지 확인받아야 했다. 속바지나 양말 색이 규정에 어긋나거나, 복도에서 뛰었다는 등의 이유로 학생에게 언어적 폭력이 가해지는 장면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 학생은 통제받는 것이 당연한 존재였다.

 

학교에서 누군가가 문제 제기하는 것을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크고 작은 폭력 앞에서 문제 제기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했다. 학교의 위계 관계 안에서 학생의 말하기는 힘을 가지기 어려웠다. 문제 제기는 사건화된 폭력에서만 가능했고, 이러한 논의는 공동체 문화에 대한 성찰 없는 개개별 사건 처리로 이어졌다. 학생들은 그 과정에 참여할 수도 논의 결과를 전달받을 수도 없었다. 일상적인 혐오 표현은 문제 제기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이러한 학교 공간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나의 경험을 언어화하기 어렵게 했다.

 

할 수 있는 공동체

 

나에게 안전함은 말할 수 있음에서 시작된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감각을 전달하고 함께 이야기하자고 손 내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질문하고 문제 제기할 수 없는 공간에서는 안전함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수 없다.

 

말하는 것만큼이나 듣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말하기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왔다. 하지만 이는 때때로 공동체의 책임을 지우기도 한다. 공동체가 내부의 말하기를 잘 듣지 않거나 말하기 어려운 환경을 방치할 때 구성원의 말하기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청소년의 말하기는 미성숙하다고 여겨져 힘을 얻지 못하고 배제되어왔다. 공적인 논의의 장이 비청소년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청소년을 주체로 인정하지 않은 채 청소년의 이야기를 당사자의 발화로만 여기거나 비전문적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공동체는 공론장에 누가 접근할 수 있는지, 또 누가 접근할 수 없는지 살펴야 한다.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잘 듣고, 듣는 데에서 나아가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함께 고민하는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모르겠지만

 

위티에서는 평등문화 약속문을 만들고 평등문화위원회를 운영하며 문화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은 평등문화 TF에서 청소년 활동가가 겪는 어려움, 위티 안팎의 조직 문화, 공동체와 위티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를 함께했다. 이 시간들을 통해 나는 함께 공동체 문화를 고민하고 만들어나가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해볼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풀리지 않은 고민들과 남아있는 질문들도 많다. 위계 없는 공간은 없다. 계속해서 위계를 성찰하고 평등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막막하다. 안전하다고 느낀 공간이 안전하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고,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 공간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민과 막막함 속에서도 안전한 공간을 찾고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완벽하게 안전한 공간은 없기 때문에, 안전한 공간을 찾는 나의 고민은 완벽한 해답을 찾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고민과 논의의 과정은 나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주었다.

 

위티의 평등문화 자료집의 제목은 <우리는 앞으로도 모르겠지만>이었다. 여전히 고민 점은 많고 우리는 앞으로도 모르겠지만, 안전한 공동체와 공간을 만들기 위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서로의 안전을 바라는 마음과 고민이 끊기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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