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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와 공공극장 내 안전-고 박송희님 무대 사망사건을 중심으로 - 임인자

2021. 11. 28.

공공극장 내 안전-고 박송희님 무대 사망사건을 중심으로


글쓴이: 임인자(독립기획자, 공공극장안전대책촉구연극인모임)

 

 

무대 위에서의 죽음

 

2018년 9월 6일, 김천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무대 설치 작업 중 공연단체의 조연출 故박송희님이 무대 바닥면 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는 리프트 공간의 6.5m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사건이 발생한 김천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은 건물 3층에 위치하여 1층에서 3층으로 리프트를 통해 무대장치를 반입하고 하강하는, 안전 관리가 필수적인 공공극장이다. 사건 당시 故박송희님은 무대가 하강되는 지점(리프트 위치)으로부터 불과 1.5m 거리에서 김천시문화예술회관 소속 무대감독의 지시에 따라 무대세트 도색작업 중이었다. 공연단체 무대감독의 요청에 따라 김천시문화예술회관 소속 공무원 무대감독이 기계조작자인 소속 공무원에게 지시하여 리프트가 하강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추락방지를 위한 조치 의무인 리프트 하강 안내 및 작업 중지 고지는 없었다. 리프트 주변에는 펜스를 비롯한 안전장치 역시 없었고 리프트 하강 시 필수적으로 작동되었어야 할 경광등은 고장 나 있었으며 그 어떤 경고음도 울리지 않았다. 조명이 무대 측으로 향하고 있어 무대에서는 리프트 하강을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였으며-설령 조명이 밝았다고 하더라도 안전장치는 존재해야 하며- 심지어 사전 안전 교육조차 제대로 실시되지 않았고, 사후 극장 무대감독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사실도 판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故박송희 님은 작업 결과를 확인하려 뒷걸음질로 이동하다가 네 걸음째에 6.5m 높이 아래로 추락하였다.

 

무대 안전은 ‘기계의 안전’인가, ‘사람의 안전’인가

 

사후에는 어떤 조치가 이루어졌을까. 공연법에 의해 공연장은 정기적으로 시설 점검을 해야 한다. 사건을 위해 법원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김천시문화예술회관은 정기적인 시설 점검을 마쳤지만, 거기에는 리프트 펜스, 경고음 장치, 경광등 등 사람의 안전을 위한 장치는 점검 매뉴얼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공공극장의 안전조치가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극장의 보유 시설 및 장비 관리, 즉 작품을 위한 장치 제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대 안전은 ‘기계의 안전’인가, ‘사람의 안전’인가, 과연 누구를 위한 안전일까.

 

투명 인간이 된 조연출

 

고 박송희님은 한국문화예술연합회에서 주관하는 ‘방방곡곡’ 사업의 일환으로 <달하, 비취오시라>를 제작한 호남오페라단을 따라 김천시문화예술회관에 당도했다. <달하, 비취오시라> 공연은 ‘2018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사업’의 일환으로 실시되었다. 그러나 본 사업에서 계약, 안전교육, 보험 등의 모든 안전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김천시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연합회와 호남오페라단이 공동주관하면서 이른바 공공기관인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사업을 실시하면서도[1], 이 모든 기관은 모든 책임을 공연단체에 맡긴 채, 연습, 셋업, 공연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아무런 관리·감독이 되지 않았다. 고 박송희님은 구두로 계약했을 뿐, 계약서를 서면으로 작성하지 못했고, 보험에 가입하지 못했으며, 도착하자마자 안전교육도 없이 업무를 시작했다.[2] 김천시문화예술회관 송○○ 무대감독이 무대에 쓰일 대소도구는 지저분해서 쓸 수 없다며 무대 위에서 작화를 하라는 지시에 따라 고 박송희님은 자신이 맡은 조연출이라는 역할이 아닌 업무를 종용받아 결국 무대 셋트를 수정하는 페인트칠을 하게 되었다.

 

무대 위에서 작업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고 박송희님의 위험한 작업환경에 대해 살피지 않았다. 고 박송희님은 조연출로서 또한 단기 비정규직 스탭으로서 가장 열악한 지위에서, 아무런 안전장치도 아무의 주의를 받지 못한 채 추락하였고, 결국 사망에 이르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책임자들은 심지어 “실족”이라든지, “경력미숙”이라든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희생자에게 책임을 물었다. 또한 적외선 CCTV의 밝기를 들어 그 당시 무대 위는 밝아 고 박송희님이 리프트 하강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 주장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검찰은 “도급”이라는 말을 내세우며 김천시는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는 누구나 안전해야 한다.

 

무대 위는 ‘밝기’와 상관없이, 밝은 곳에서도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 위험은 어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계의 작동, 약속의 미비, 약속의 불이행, 안전총괄책임자 및 안전관리자 등의 실효 없는 작동[3] 등에서 비롯된다.

 

무대에서 위계가 작동하면 우리 모두가 위험해진다. 경력이 없는 누군가가 무대 위에 올라가면 사망해야 하는가. 아니다. 경력이 없어서 사고가 나거나 다치는 것이 아니다. 공연장안전지원센터에서는 이 사건 이후에 <초보자를 위한 안전매뉴얼>과 같은 것을 만들었지만, 이것을 보면 문화체육관광부나 공연장안전지원센터에서 안전의 책임을 누구에게 돌리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는 초보자의 숙련이 아닌 공연장의 안전 매뉴얼에 따라 모든 사람의 안전이 지켜져야 한다는 명제가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즉, 무대 위에서는 정규, 비정규, 임시 등의 조건에 구애 없이 모든 이들이 당연한 권리를 가지고 위험을 함께 예방하며 약속된 것들의 이행을 통해 모두의 안전을 지키고 지켜져야 한다.

 


[1] ‘방방곡곡’ 사업은 한국문화예술연합회에서 주관하는 사업이었으나, 이 공연에서 일어난 사망사건에 대해 법적으로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며, 후에 예방을 위해 보험 가입, 계약 등에 대해서는 공연단체에 안내하고 있는 상황이다. 위험의 외주화 문제에 대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언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 후에 김천시문화예술회관은 안전교육을 실시했다며 조작한 서류를 법원에 제출하였다. 이는 엄연한 불법행위이다. 그러나 검찰 조사에서 이 조작된 서류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으며 검찰에서도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3] 김천시문화예술회관에서는 고 박송희님의 사망 이후 김천시 담당 공무원 및 김천시문화예술회관 관장을 비롯 모든 사람이 한명의 무대감독에게 책임을 돌렸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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