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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E: 넌> 2021 프로젝트 보기/칼럼, 좌담

'다름'의 품격 - 김보린

2021. 11. 28.

‘다름’의 품격 


글쓴이: 김보린(춘천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팀)

 

 

가을의 정취가 묻어나는 11월 첫째 주 토요일 아침 10시, 춘천시청 뒤편에 있는 춘천공연예술연습공간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공간에 들어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둘러앉은 사람들을 면면이 살펴보니, 20대 초반부터 90세 어르신까지 참 다양했다. 겉모습으로만 봐서는 도무지 이들은 무슨 작당을 위해 모인 건지 예측하기 힘든 이 모임, 바로 춘천문화재단의 ‘문화 다양성 예술교육 <돌아온 봄> 워크숍’이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은 춘천 시민들이 중앙의 거대 담론보다 지역이라는 내 삶터 안에서의 안전과 행복, 관계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지는 데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춘천문화재단은 이러한 상황과 더불어 지역 분권화 정책에 따라 기존 학교, 시설에 갇혀 있던 교육 주체의 역할을 생활권 단위로 전환하고, 숙의 민주주의 활동으로의 담론 전환, 그리고 커뮤니티 공간을 지역 배움터로 전환하고 시민 스스로가 삶터의 의제를 발굴·실천하는 등 즉 ‘문화 시민력’을 강화하는 경로로 새롭게 설정하고 활동으로의 연결을 모색하였다.

 

지역의 기초문화재단이 문화예술(교육)거점으로서 시민 누구나 접근 가능한 문화예술 환경, 교육환경 조성을 위한 역할과 방향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는 올해, 춘천문화재단이 추가한 키워드는 바로 ‘품격’이다.

 

‘돌아오다’ : 품격 있는 인간성의 회복,

‘봄’ : 포용과 연대의 따뜻한 시선

 

춘천이 말하고자 하는 ‘품격’은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전제로 하며 이것은 세계시민의 역량과도 관계가 있다. 어느 특정 국가나 지역의 문제가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것처럼 전 인류가 공통으로 맞닥뜨린 문제를 지구촌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연대감을 가지고 세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안에 관해 관심과 참여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세계시민 감수성을 지닌 ‘품격 있는 시민’ 주체의 등장이야말로 품격 있는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겠다. (춘천에서는 이러한 ‘품격 있는 시민 주체’를 ‘동네지식인’이라 명명하고 있다.) 춘천이 말하고자 하는 품격 있는 도시란, 결국 세계시민 감수성을 지닌 ‘품격 있는 시민’이 ‘서로를 돌보고 살필 줄 아는 도시’, ‘이웃 간의 안전한 관계망이 작동하는 도시’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우리는 서로 일상을 나누고 서로를 돌보며 살피고 있을까?

 

최근 몇 년 사이에 매체를 통해 빈번하게 오르내리는 뉴스들을 톺아보면 많은 부분 ‘차별’과 ‘혐오’, ‘갈등’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해석될 수 있는데 이런 우리 일상에 만연한 다양한 갈등요소들은 말 그대로 또 다른 폭력과 차별을 부추기고 다시 새로운 갈등을 야기한다.

 

문화 다양성이란 개념이 그 자체로 차별이나 갈등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춘천이 문화 다양성에서 주목한 것은 다름에서 오는 차별과 갈등의 요소들을 문화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예술적 성찰을 통해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인정하는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함이다.

 

우리는 다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춘천에서는 다양한 예술가 시민, 활동가 시민을 만날 수 있다. 문학, 연극, 미술, 움직임, 음악 등 예술장르 기반이나 인권, 젠더, 환경 이슈 등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활동의 흔적들이 이들에 의해 춘천 지역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러한 지역 환경 속에서 문화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자신의 장르와 활동을 연결하여 문화적 표현활동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즉 ‘다름’이라는 문화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가치 중심 프로젝트 연구를 팀 단위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문화재단으로서는 획기적인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장애, 다문화, 새터민 등의 단위 대상 중심의 사업은 이미 많은 기관과 단체에서 진행하고 있지만, 그 상위 단계로서의 ‘다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예술교육으로의 전환을 이끌어내는 것, 시민 스스로 ‘다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상생과 공존의 방향을 모색하여 예술교육 콘텐츠를 개발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드문 사례다,

 

다만, ‘다름’에 대한 성찰의 계기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역에서 다양성, 다름이라는 키워드는 아직은 낯설고 어려운 주제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러 경험을 통해 재단이 시민과 함께 손을 잡고 어려움을 타파해나가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미 절감하고 있었다. 따라서 교육연극 장르를 통해 여러 가지 방법론으로 ‘다름’을 접할 수 있도록 워크숍을 설계하였고 2기수 총 8회차의 수업을 진행했다.

 

 

문화 다양성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체감하진 못하고 있었어요.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 참가자 A

알고는 있었지만 실천하지 않았던 지금 우리를 움직이게끔 다시 한번 채찍질하는 기분의 워크숍이었습니다. - 참가자 B

“‘우리는 모든 다양성을 다 존중해야 할까?하고 던져주신 질문이 기억에 남아요. 오래 고민해봐야 할 질문인 것 같아요. - 참가자 C

다르다는 것은 무엇이고 문화를 만드는 기준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요? - 참가자 D

편견을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의 공간을 넉넉히 마련하고 싶어요. - 참가자 E

 

이날의 화두는 ‘ 편견이 불가피하다면 ’ 이었다. 편견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 용기 ’ 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다름’을 정의하는 것도 이해하는 과정도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고 폭넓었으며 깊이가 있었다. 물론 이 짧다면 짧은 워크숍으로 개인의 가치관과 철학을 송두리째 변화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사람들이 말하고 움직이는 모습들을 안에서 우리 춘천이 변화의 시작점에 서 있구나, 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다름은 아름답다.”

 

춘천에서는 지금 이 당연하지만 당연하지만은 않은 명제를 두 팔로 힘껏 끌어안아 나와 우리의 삶 안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그 변화가 우리를 서로 돌보고 살필 수 있는 힘과 용기로 거듭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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