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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목소리: 조각 장르 내 카르텔에 관한 대화

2021. 8. 25.

현장의 목소리: 조각 장르 내 카르텔에 관한 대화

 

패널: 임기오 조각가(이하 ‘오’로 표기), 홍기하 조각가(이하 ‘하’로 표기)

기록자: 정혜진 성평등/탈위계 문화조성사업 운영단(이하 ‘진’으로 표기)

 

 

자고로 네트워크는 각자의 필요에 의해

개별적으로 생성되고 미지근하게 유지된다.

 

진: 사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을 때 두 작가를 떠올린 데에는 같은 조각 장르라는 것 이외에도 굳어진 기존 체제에 대한 대안적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홍기하 작가의 경우 남성 작가 중심 조각계에서 여성 작가들 간의 네트워크를 만들고자 ‘한국 여성 조각가 카르텔’을 운영하고 있고, 임기오 작가의 경우 소위 In 서울 예술 대학 출신의 학연 중심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작가 그룹 ‘CNU’를 운영하고 있다. 각자 개인 소개와 소속되어 있는 커뮤니티 설명을 덧붙여달라.

 

오: 조각가 임기오다. 그리고 ‘CNU’라는 팀을 하고 있다. 사실 실질적으로 팀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CNU는 본인이 나온 지역 대학교 이니셜이고 출신 친구들 3명과 함께 각자 C, N, U 하나씩을 맡아 팀을 만들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부모 없이 예술을 시작하는 아이의 느낌으로 만든 그룹이었다. 결과적으로 함께 활동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서로의 활동을 지켜봐주면서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것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팀 이름 때문에 대학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읽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렇지는 않지만 확실히 서울 예술 대학 졸업생들 간에 공유하는 기회가 많음을 느끼고 지역 대학 출신 작가가 서울, 그리고 미술계 현장으로 진입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하는 물음은 있다.

 

하: 조각하는 홍기하다. 본인도 올해 ‘한국 여성 조각가 카르텔’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커뮤니티를 만들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만나지 못하고 있다. 오픈하여 모집을 진행했었고 현재 인원은 6명 정도 된다. 혼자 조각 작업을 하면서 체력적으로 힘든 것이 많았고, 인프라적 한계도 있었다. 조각계는 선후배 간에 일을 주고, 받을 때 주로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고 보조를 구할 때도 비교적 시키기 편한 남성을 쓰다 보니 자연히 예술계 안의 인맥도 남성 중심으로 생성된다. 그래서 여성 작가들은 학교 시스템을 벗어나 작업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인프라가 많이 부족하다. 그런 상황에 부딪힌 작가들이 나 이외에도 많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 함께 작업을 이어나가는 데에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만들게 되었다. 아직은 본격적으로 활동은 못 하고 있고, 서로 전시가 있으면 응원해주고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하는 수준으로 지내고 있다.

 

 

알지만, 몰랐던 발아래 카르텔

 

오: 지역은 확실히 그들끼리 똘똘 뭉치는 그들만의 리그가 더욱 굳건히 존재한다. 카르텔은 물론 넘치게 많고, 예를 들어 대회 수상도 심사위원에 따라 지정된 수상자가 정해져 있는 경우도 있다. 또, 지역마다 조각회가 있어서 남성 졸업생들은 자동으로 가입되는 식으로 문자가 오기도 한다.

 

하: 본인이 소속된 학교에도 조각회가 있는데 그 안에서 마음에 드는 남학생을 조교로 시키는 등 여전히 썩은 동아줄이 존재한다. 학생 신분일 때도 현장에서 일을 많이 해보고 싶어 일을 구할 때마다 ‘남성만’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문의해보니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조교도 하고 싶었는데 할 수 없었다. 교수에게 항의했을 때 미투 이후로 여성을 기피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학교 내 어떤 도움이나 연결망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았던 것 같다.

 

진: 학과 내 실제 성비는 어떻게 되나?

 

하: 7대 3 정도로 여성이 많다.

 

오: 5대 5 정도 였던 것 같다. 또한 본인의 경우 현재 상업 조각 쪽에서 일하고 있는데, 확실히 직원조차 보통 여성을 쓰지 않는다.

 

하: 상업 조각, 순수 예술 할 것 없이 비율상 활동하고 있는 작가 비율이 정말 낮다. 경력이 절단되는 경우가 많다.

 

진: 그 많은 작가는 다 어디로 갔을까.

 

하: 탈미술하여 전혀 다른 업종으로 간 경우도 있고, 그나마 관련이 있다면 3D 모델링 업무나 학원으로 간다. 동기 중 작가를 하는 사람은 2~3명밖에 없다.

 

오: 특히 이번 인터뷰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현재 일하고 있는 상업 조각 현장에서 막내고, 바로 위 선배가 40대다. 중간 나이대가 부재한데 그 공백이 생기는 이유가 바로 위계를 악용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기 일쑤고, 계속해서 부릴 수 있는 막내 라인만 바뀌는 식이다.

 

진: 주변에서 상업 조각이나 공공 조각 등의 대규모 현장에서 노동하는 작가 동료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 대부분 윗사람을 어떤 직급이나 역할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형’으로 호칭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학교 선배,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식으로 일이 생기다 보니 더 노동 착취를 하기 쉬운 구조 같다.

 

오: 기술을 배운다는 명목 하에 사람을 부릴 수 있는 구조다. 물론 상하 직급과 그에 따른 책임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예를 들면 내가 너에게 일을 구해주었으니 무언가를 해주어야지 않겠냐는 등 금전적인 것을 요구하는 상황까지 겪었다.

 

하: 시각예술 내 어떤 장르나 카르텔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특히 개선되지 않는 부분이 공공 조형물이다. 로비와 브로커 등 범죄의 수준에 닿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각하며 밥 벌어먹기 위해서는 콜렉팅 시장과 연결되기 힘든 부분이 있기 때문에 조형물 시장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솔직히 젊은 작가 중에 그것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작가는 없다. 그곳은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는 인식이 있다.

 

오: 교수진들은 국내 방방곡곡에 자신이 세운 조형물 카탈로그가 하나씩 있다. 공모형식이기는 하지만 이미지를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는 작가 위주로 돌아간다. 물론 심사위원도 거기서 거기고 브로커가 존재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런 문제들은 깊은 뿌리부터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교를 하거나 활동을 하려면 노동력을 제공하여 교수의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암묵적 체계가 있다.

 

하: 학교별로 라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여러 조형물이 들어가는 건이 있을 때 어떤 교수든지 본인 학생들에게 일을 주려고 하므로 라인과 카르텔이 없어지지 않고 대물림되는 듯하다.

  

 

조각을 조각내보자 왜 조각일까

 

하: 조각은 노동 집약적이고 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특히 라인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오: 조각은 마초적이라는 생각들이 깨졌으면 좋겠다. 조각은 사실 정말 섬세하고 우아한 작업이다.

 

하: 아는 남성 작가분이 여성 작가의 보조로 작업실을 방문했는데 쾌적해서 놀랐다더라. 조각은 마초적이어야 한다는 구시대적 생각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진: 정말 이상한 낭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현재 각자 개인에게 조각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 건강. 육체는 유한하기 때문에 당겨쓰다 보면 순식간에 건강을 잃는다. 외상이 잦고 유해한 약품을 많이 다루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정신 건강도 포함된다. 또한 환경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봤으면 좋겠다. 조각은 폴리, 플라스틱 등 상당 부분 친환경적이지 못한 재료들이 사용되며 물리적인 부피 때문에 전시 후 대부분 버려진다.

 

오: 요즘은 일하면서 작업을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숙제다. 생각을 할 수 있는 쉼의 시간 또한 작업의 일환이기에 작가는 육체적으로도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하: 현재 2t 정도의 조형물 2개를 만들어두었는데 규모 때문에 전시할 곳이 없더라. 그런 고민 속에서 길에 있는 대형 조형물들이 눈에 들어왔고, 이것이 현재 공공 조형물 카르텔이라는 고민까지 이어져온 것 같다. 이 시대에 거대한 물성이 무모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방법을 찾는 것이 요즘 본인의 관심사다.

 

진: 점점 더 큰 작업을 만들고 있는데 어떤 이유인지 궁금하다.

 

하: 반항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좋다. 공간이 협소하고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보통 많이들 기피하는데 그런 것들을 무시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진: 마지막으로 하지 못했던 말들을 두서없이 뱉어 본다면?

 

하: 2t짜리 조각 작품 전시할 수 있는 곳을 찾습니다. 작품 2개 대기 중입니다.

 

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으로 미술계가 특히나 개인적이거나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부터 유독 연대라는 말을 여기저기에서 많이 썼었는데 그래서 과연 무엇이 연대가 되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여전히 필요한 것은 ‘연대’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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