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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E:넌 무엇을?/[기획포럼] 역동하는 성평등, 자가당착의 오류

[주제 토론] 다양한 정체성을 수용하는 안전한 사회

2023. 1. 3.

- 모더레이터: 신현정(문화기획자,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활동가)

- 패널

: 김유진(문화기획자)

: 사랑해(예술가)

: 신효진(독립 기획자/한국퀴어영화제 집행위원장)

: 이지영(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전문강사, '22년 NONE 참여자)

 


김유진: 발제를 들으면서 자가당착 오류의 주어는 정책, 역동하는 성평등의 주어는 현장이라는 것이 빠져있는 듯하다.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표현을 정확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쉽거나 힙(hip)한 언어로 담론을 만들어야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유혹이 있고, 그래서 선을 아슬아슬하게 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일명 '대충 퉁치고' 넘어가는 현상은 우리에게 시간이 부족해서 발생한다. 또한 자원 분배 과정을 경쟁의 관점으로 보기보다는 공동체 내부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스펙트럼의 일부인 협상으로 보았으면 좋겠다. 

덧붙여, 퀴어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신효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예술인활동증명을 할 때 기존에 구분된 장르 예술에 국한해서 신청할 수 있게 되어있다. 기존의 영역을 침범하고 이탈하려는 욕망을 가진 퀴어 아티스트가 관습적인 규정, 문법에 맞춰 예술 장르를 정의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따라서 예술 표현 활동 전반을 포괄하려는 노력과 기준 제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해: 성소수자로서 답변드리면, 일단 장르 구분이 없어졌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다. 퀴어와 예술인 양쪽의 당사자성과 정체성이 맞닿는 예술 작업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자기 증명을 번갈아 가며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생존뿐 아니라 예술 활동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이지영: 다원예술이라는 장르 구분 안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퀴어 예술이 존재함에도 정책적으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현실적으로 새로운 트랙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발제자 신현정 님이 접한 서울과 지역 거버넌스 사이의 온도 차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궁금하다. 



신현정: '로컬'이 뜨는 시대를 처음 접해본다. 내가 활동하는 제주도는 관광지, 귤, 돌하르방 정도로 대표되는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이주민이 증가했고 그 안에서 정치적 흐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가족 위주의 폐쇄적 공동체가 아니라 눈치 보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이주 흐름 안에서 2018년 미투운동이 격발했다. 여전히 지역에서는 원로작가들 중심의 문화생태계가 존재하며, 한 다리만 건너면 누구인지 다 아는 구조에서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었고 가해 상황을 추측하며 수군거리지만 공공의 장에서는 사건 이야기를 꺼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

 

 어? 이렇게 문화예술계 성평등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2021년 NONE 사업을 참여하면서 들었던 생각이고, 아마 제주도에서 오늘과 같은 포럼이 열렸다면 참여자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반면 제주도는 수군수군하는 작은 자기 공동체가 아주 많고, 서로를 지켜보고 있으며 지속해 마주치는 기회가 상당히 많다. 지역이나 지원사업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그 시간의 빈틈에서 수군거림이 커지고 새로운 담론을 촉발하기도 한다. 정제되지 않았지만 감정적으로, 정확한 근거를 들 수 없지만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상태를 진단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김유진:  표현의 자유도 여러 다른 가치들과 교차해서 보는 과정들이 꼭 필요하지 않을까. 특정한 존재, 그 존재의 입장, 그 존재의 표현 이 세 가지를 일치시키면 차별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사랑해 님의 사례에서 보면 '페미니즘'을 주제로 나온 공모였고, 반성매매와 반하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음에도 주최 측에서는 결국 예술인들이 무의식적으로 약속을 배반할 존재로 규정했다는 것이 위험한 발상이라고 본다.


신현정: 존재, 존재가 가진 입장, 존재가 가진 것을 짚어 주셨다. 소위 진보 진영의 정치적 구호 안에서도 이 구도는 굉장히 많이 쓰이고 있다. 이를테면 최근 이태원 참사를 두고도 안전 사회를 위한 담론을 나누기보다 대통령 퇴진만을 요구하며 한 명이 책임지고 물러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그 모든 책임을 대표자의 문제로 귀결시키려 하지 않나. 그 이후에는 외치던 구호와 던지던 질문이 모두 사라지고 다시 유사한 문제가 일어난다.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지금의 성평등 운동은 이와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이지영: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관의 용어를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대중들은 사안을 정확하게 인식하고자 하나, 관의 언어로 쓰인 글만 보면 다수는 핵심은 파악하지 못한 채 호도되기 쉽다. 계약서가 있음에도 발생한 사랑해 님의 사건을 접하면서 예술인들은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지킬 수 있고, 안전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고민이 들었다. 

 

신현정: 신효진 님 발제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에게는 연대가 필요하다"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전주에서는 성평등전주와 나름의 싸움을 해야 하고, 퀴어 예술 쪽에서는 정책에 반하는 흐름을 만들어내는 싸움을 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들이 각개전투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기조발제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마치 '안전'을 어디에 맡겨둔 것처럼 국가가 보호해주고 어떤 특정 위원회를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고 여겨온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서로를 구제할 수 있는 연대를 늘려 새로운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연대를 만들기에 우리는 너무 시간이 없고, 지쳐있다는 한계도 있다.

 

신효진: 저는 각개전투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정체성, 정치화와도 비슷한데, 그러면서 더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체성 내부에도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며 소수자 목소리가 지워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용서'를 말하고 싶다. 성평등을 비롯해 여러 가지 문제에 있어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그렇지만 또 사회 안에서 다 같이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니까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떻게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넬 수 있고,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지를 계속 고민했으면 한다. 

이지영: 제가 성희롱·성폭력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보통 양성개념을 바탕으로 강의하게 된다. 그러면서 성소수자, 퀴어 정체성을 가지신 분들에 대해 나도 모르게 어떤 배제의 마음이 가지지는 않았나 반성도 하게 된다. 교차성에 대한 고민을 예술인 스스로가 더 많이 하고 연대까지 이어지려면 서로를 더 많이 알아가야 한다. 그래서 나 스스로 먼저 퀴어, 페미니즘 커뮤니티 활동에 같이 참여하면서 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각개전투와 소소한 발화가 계속 연결되고 공론화되어야 큰 확성기가 생길 것이다.

 

사랑해: 존재라는 입장과 표현이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모두가 가끔 잊는다는 걸 다시금 상기시켜 주어 좋았다. 사람이 다층적인 존재 같다. 한 사람 안에도 다양한 정체성이 있는데 이를 가끔 편협하게 해석해버리는 사람들에 대해 유감을 표현한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며, 제대로 사과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과하는 것은 지난 업적과 취했던 입장을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며, 잘 사과한다면 다시 앞으로 함께 나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


모두가 같이 더 안전하게, 더 스스로일 수 있는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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