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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E:넌 무엇을?/[기획포럼] 역동하는 성평등, 자가당착의 오류

[신효진] 발제1. 성평등 문화정책 퀴어링하기

2023. 1. 3.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포용하는 한국퀴어영화제에서 2015년부터 활동하는 신효진 님의 첫 번째 발제 요약문입니다. 

성평등한 문화정책의 역사

여성 인권에 맞춰졌던 초점은 2014년 양성평등기본법에 이어 2017년 후반부터 2018년 초반까지 이어졌던 미투운동과 문화비전2030을 거쳐서 확장된 성평등 개념이 등장합니다.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나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며 양성평등에서 나아가 다양한 성별 정체성을 포함하는 성평등으로 접근하기를 바랍니다.

 

퀴어와 예술

퀴어 - 이상한, 기이한 등의 뜻을 가진 단어로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단어로 사용되고 있음.

퀴어의 단어 개념을 어디까지 어떻게 봐야 할지 여전히 저 스스로 정의하는 중입니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퀴어라는 존재는 확실하게 정박되어 있지 않고 유동적인 존재이며 이것은 필연적으로 실험과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에서도 ‘퀴어한 것’은 대부분 정상성에서 벗어나므로 이를 기존의 예술장르와 형식 안에 담기 어렵다는 괴리가 발생합니다. 따라서 퀴어 예술인들이 정상성에서 탈출한 실험을 하는 경우 기존의 문화예술정책 제도 안에서는 지원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무지개다리 사업과 언어 표현의 자가당착

다양한 소수문화계층의 문화적 표현기회를 확대하고, 다양한 문화 주체 간의 문화교류 및 소통 활성화를 도모하는 정책 중 하나인 <무지개다리 사업>을 하는 여러 지자체의 홍보 문구에도 여전히 차별의 언어가 등장합니다. 시혜의 시선을 담거나 부정적 관점이 담긴 차별 표현에 대해서는 모두가 재고해보았으면 합니다. 특히 ‘여배우’처럼 직업에 붙는 성별 구분, 언어장애인을 차별하는 ‘벙어리장갑’, 가부장제 가족관계를 반영하는 ‘집사람’ 등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차별의 언어입니다. 

 

성별 정체성과 정치

성평등한 문화정책을 만들기 위해서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역시페미니즘이겠지요. 여성 정체성을 기반으로 기존의 억압과 차별의 문제를 법적, 정책적 변화를 통해 우리의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전략으로 보편주의에 포섭되지 못하는 다양한 사회 소수자들을 존중하고 차별에 저항한다면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다만 분리주의에 빠져 다른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에 빠지지 않아야 것입니다. 정체성 기반의 정치 혹은 정책 활동에서 나아가 모두 연대하여 혐오에 반대할 있기를 바랍니다.

 

발제 전문보기

 

성평등 문화정책 퀴어링하기

 신효진 / 독립기획자, 한국퀴어영화제 집행위원장

 

 

양성평등에서 성평등 문화정책으로
우리나라 양성평등 정책은 1983년 정부의 “여성정책심의위원회” 설치와 “여성발전기본계획”의 수립부터였다. 2014년 5월 「여성발전기본법」이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전면 개정됨에 따라 “여성정책기본계획”은 “양성평등기본계획”으로 개칭되어 시행되었으며 정책 전반에 있어 양성평등을 기반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여러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이후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회 내 성차별 문제와는 별개로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정책적인 움직임은 미미하였다. 이후 2018년 1월부터 확산된 문화예술계의 ‘미투’운동은 우리 사회 내 뿌리 깊게 퍼져있는 성희롱·성폭력을 고발하고 가부장적 문화예술계의 어두운 면을 가시화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에서 정책적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미투운동으로 말미암아 정부는 “문화비전2030”을 통해 성평등 문화 실현을 위한 여러 기치를 내걸었다. 문화예술 기관에서도 탈위계·성평등을 주요 미션으로 설정한 여러 사업에 예산을 편성하면서 성평등한 문화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결정적으로 오랫동안 국회를 계류했던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 2022년 9월 시행되면서 보다 성평등한 문화예술 정책을 위한 법률적 기반을 획득하였다. 해당 법의 4장 내용 일체가 “성평등한 예술 환경 조성”을 위한 것으로, 향후 예술계 성평등 문화조성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위 두 문단을 보면서 두 개의 미묘하게 비슷한 단어가 한 개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이가 있다면 젠더감수성이 높은 축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바로 “양성평등”과 “성평등”. 인간의 성이 2개로 분류할 수 있다는 성별이분법에 국한된 양성평등과 성불평등에 대한 반대어인 성평등.“문화비전2030”제정에 있어서도 해당 용어의 차이점을 인지하고 성별 이분법을 뛰어 넘으려는 작은 제스처를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이제 남성과 여성을 비롯한‘모두를 위한’ 문화정책은 걸음마 단계일 뿐이다. 언어는 이를 사용하는 이들의 정신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안전하게 예술창작과 향유를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기반을 다질 시점이다. 간성(Intersex), 트랜스젠더(transgender), 논바이너리 및 젠더퀴어(non-binary/genderqueer)의 존재를 거세시키는 양성평등 정책을 넘어 보다 많은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성평등한 문화정책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퀴어한 아티스트,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창작영역에 있어 다양한 형식적 실험과 장르의 경계를 초월한 작품은 예술의 새로운 흐름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퀴어’라는 개념을 어디까지 볼 것인지는 언제나 논쟁거리이지만, 성소수자 이슈에 있어서 단일한 기준을 가지고 예술을 대하지 않는 것이 보다 풍성한 시선을 담을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박되어 있지 않은 존재들(퀴어)의 예술은 다양한 형식적 실험들과의 공명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하여 “퀴어함”을 지향하는 예술가들은 기존의 장르로 수렴되지 않는 형식의 다원성을 가진 작품, 전형적인 이미지와 내러티브를 대체할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 작품, 다양한 예술 현장에 주목하여 예술의 경계를 확장할 수 있는 작품 등을 지향한다. 이는 그 어떠한 범주에 규정되기를 거부한 ‘퀴어다운’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데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며, 동시대 퀴어 이슈를 깊이 있게 사유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퀴어예술가 혹은 퀴어아트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 열려있지 않은 것 같다. 기획 포럼을 준비하며 퀴어예술가들이 예술인활동증명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는 예술가와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직 기존의 장르와 형식에 갇혀있기 때문은 아닐까?(하여 많은 퀴어예술가들이 “다원예술” 범주의 지원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실태를 보인다) 보다 새로운 그리고 형식적 실험을 하는 여러 예술가들에게 친화적인 예술정책이 마련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나는 여씨가 아닙니다
근 몇 년 사이 공공영역에 있어서 퀴어를 위시한 성평등을 소재로 한 여러 사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언제나 환영이지만 정부나 지차제 등 공공영역 사업의 세부적인 내용(특히 홍보물)에 있어서 시혜적인 시선과 부정적인 관점을 담은 차별적 표현은 여전히 발견되고 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성별, 인종ㆍ이주민, 장애 등 3가지 영역을 중심으로 정부 홍보물에 담긴 혐오표현 모니터링을 실시한 적이 있다. 모니터링 결과 장애와 관련된 금지된 표현 '장애우', '정신지체', '정상' 등이 16건, 선입견과 편견이 포함된 표현 '장애극복', '능력 개발', '장애인은 어렵다/안된다' 등이 18건으로 확인되었다. 사실 이런 용어의 미성숙한 사용은 법률 속 다양한 명칭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러한 현상을 명백히 보여주는 예시가 또 있다. 제작년 서울시가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일상 속 단어 1,864개에 대해 ‘차별적 의미가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시민들이 제시하였다. 접수한 단어들은 대부분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는 단어였다. 너무 많은 예시 중 몇 개만을 이야기해보자면 우선 여성의 직업 앞에만 성별을 특정하는 것이다.(비슷한 건으로 남고는 없는데 왜 여고만 있는 것일까?) 이외 처녀작, 유모차, 저출산, 미혼, 몰래카메라, 맘스스테이션, 학부형, 벙어리 장갑, 시댁, 안(집)사람 등 (성)차별적 언어사용의 예시는 너무나도 많다. 거시적인 정책 변화도 중요하지만 우리네 삶 깊숙이 뿌리내려있는 작은 습관을 하나씩 바꿀 때 진정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정체성-정치의 원환을 넘어
보다 성평등한 문화정책을 위해 많은 이들이 성적지향, 성별 등의 ‘정체성의 차이’(difference of identity)를 기반으로 지배집단에 의해 억압되고 차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률적, 정책적 시도하고 있다. 보편주의 원리에 포섭될 수 없는 ‘주변부’와 ‘소외된 이’를 존중하고, 차이가 곧 차별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다양한 정책을 통해 문화다양성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사회 문화적인 집단 차이를 애써 무시하거나 억압하려는 ‘동일화 정치’(politics of identification)로는 결코 서로 다른 집단 간의 실질적 평등에 이를 수 없으므로 정체성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전략으로 삼아 새로운 실천과 대항으로서의 정책을 전개한다. 그러나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게 정체성의 차이를 핑계로 타인을 혐오하고 배격하는 폭력을 드러내는 경우도 다수 발생한다.
일례를 들어보자. 혹시 터프(TERF)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 있는지. TERF는 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약자이다. 페미니즘은 남성중심주의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여성의 권익 신장을 위해 목소리을 낸다. 그러나 오직 여성만을 위한 분리주의의 원환에 빠진다면 ‘터프’와 같이 배제적 폭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 다른 소수자의 목을 겨누는 소수자. 너무 슬픈 일이지 않은가?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예술행동은 지배집단과의 관계망 속에서는 전복적 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분리주의와 고립화를 야기하고 권위적 공동체주의를 촉진할 수 있다. 또한 공동체 내부적으로는 소수집단 내의 다양성과 차이를 억압하는 지배담론을 확대 재생산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한계점을 지닌다. 성평등 정책을 수립하는 부분에서도 단독적인 정체성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정책을 기대해본다. 우리는 차별과 혐오가 아닌 연대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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