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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E: 넌> 2021 프로젝트 보기/확성기 1차 : LINE과 카르텔, 위계의 되물림

1차 토론회 현장 스케치

2021. 8. 25.

릴레이 토론회 <확성기 : 확장하는 성평등·탈위계 이야기>


1차 : 라인(LINE)과 카르텔, 위계의 되물림 : 기록 

 

기록: 전민정

 

문화예술계 내에 성평등하고 위계 없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성평등·탈위계 문화조성 사업’을 통해서는 지원사업, 토론회,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사업 소개) 이중 토론회는 그간 쉽게 말할 수 없었던 민감한 주제들을 드러내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다양한 주체가 모여 머리를 맞대보는 자리이다. 토론회는 8월에 시작해 10월까지 ‘라인(LINE)과 카르텔, 위계의 대물림’, ‘화장실 빅뱅:공공공간의 성평등과 다양성’, ‘돌아오는 가해자(가제)’, ‘혐오와 불편, 그 사이의 민원(가제)’를 주제로 총 4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토론회 소개)

 

릴레이 토론의 서두를 연 1차 토론회 ‘라인(LINE)과 카르텔, 위계의 대물림’는 8월 9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에서 열렸다. 누구나 막연히 느끼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말하기 어려웠던 라인과 카르텔의 문제를 참가자 간의 대화를 통해 성찰해보기 위해 마련되었다. 전체 토론회 진행은 유모라 예술청 공동운영위원이, 주제별 토론을 진행할 모더레이터는 사업 운영단인 김수희, 박슬기, 정혜미, 정혜진 4명이 맡았다. 이번 토론회는 사전에 진행된 설문조사를 통해 참가 신청을 한 사람들만 초대해 비공개로 진행했다. 1차 토론회에 참가한 인원은 총 25명으로 이중 17명은 실명으로, 8명은 익명으로 참여했다. 먼저 사업과 토론회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 이어 진행 원칙, 주의 사항 등을 안내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참가자들의 이름 표기 방식을 통일하고, 익명을 원하는 참가자는 닉네임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화면에 이름과 얼굴을 노출하지 않고 음성으로만 참여하는 방식으로 철저하게 익명이 보장되도록 했다. 토론 내용의 특성상 참가자들의 개인정보를 유추하거나 화면을 캡처하고 녹화하는 행위도 금지했다. 서로 높임말을 사용하고 호칭은 ‘님’으로 통일해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이 이뤄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다.

 

 

일반적인 토론회와 가장 달랐던 부분은 ‘토론회 참여를 위한 약속문’ 낭독 시간이었다. 약속문은 운영진들이 여러 차례의 회의를 통해 같이 검토해서 만들었다. 공동으로 작성한 약속문의 초안을 지원사업의 커뮤니티 프로그램에서 공유해 의견을 수렴하고 다시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번 토론회뿐만 아니라 사업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마다 참가자들이 약속문의 내용을 숙지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약속문에는 모든 구성원의 상호 평등한 관계, 동등한 발언권, 자유로운 의견 개진, 불편한 사항에 언제든 문제 제기할 수 있는 문화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진행자의 호명에 따라 약속문의 6개 조항을 운영진과 참가자 6명이 1개씩 낭독하며 그 의미를 되새겼다.

 

1차 토론회의 소주제는 ‘개인 창작자에게 미치는 라인의 영향’, ‘탈위계와 조직의 필요성’, ‘서열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공평한 기회와 경쟁 체계’로 구성되었다. (1차 토론회 소개) 4명의 모더레이터가 인사를 전하며 각자 담당한 주제를 짤막하게 소개했다. ‘개인 창작자에게 미치는 라인의 영향’을 맡은 정혜진 모더레이터는 속에 있는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 놓을 수 있는 편안한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드러냈으며, ‘탈위계와 조직의 필요성’의 김수희 모더레이터는 본인이 연극계에서 위계에 가까운 역할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서열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의 박슬기 모더레이터는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운영단도 많은 성찰과 반성을 했다. 대안을 내놓기 어려워도 의식을 가지고 꾸준히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평한 기회와 경쟁체계’를 담당한 정혜미 모더레이터는 “저 또한 위계의 학습자이자 피해자, 가해자이기도 했다.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예술계의 기회 구조를 돌아보고 문제의식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본격적인 소그룹 토론에 앞서 정혜진 모더레이터의 ‘보이지 않는 위계’를 주제로 한 모두 발제가 이어졌다. 현장의 실태를 다각도로 이해하기 위해 이번 토론회 설계 전에 진행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설문 문항은 객관식 30개, 주관식 1개로 구성되었으며, 사업 운영단의 사전 심층 토의에서 나온 정성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설문은 지난 7월 13일부터 20일까지 8일 간 진행되었고, 응답자들에게 토론 참여 의사도 같이 물었다. 조사 대상은 문화예술 관련 종사자와 미래문화예술인이었으며, 총 423명이 응답했다. 설문을 통해 토론의 주제인 공평한 기회와 경쟁 체계, 탈위계, 라인, 서열 등에 대한 응답자의 생각을 취합하고 토론회에 기대하는 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설문조사 링크)

 

설문조사 결과 공유에 이어 4개의 소그룹별 토론이 약 90분 동안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각자 설문조사 응답 시 선택한 주제에 따라 소회의실로 흩어져서 토론에 참여했다. 먼저 ‘개인 창작자에게 미치는 라인의 영향’을 주제로 한 토론방에는 연극, 시각예술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5명이 모였다. 먼저 ‘성향과 가치관, 철학이 같아서 계속 같이 작업하는 경우도 라인인가’라는 질문에는 ‘아니다’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라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갑과 을이 존재하는 착취 구조, 주제와 관련 없이 친분과 경력을 활용해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단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던 사람하고만 하는 게으른 기획이 많은데 모험을 하는 기획이 많아지면 좋겠다’, 기획자나 단체의 대표, 문화재단, 지원의 주체가 되는 기관들은 라인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계속 새롭고 능력 있는 단체와 예술가를 발굴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으며, 멘토와 멘티 시스템은 새로운 라인을 만드는 일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토론을 통해 ‘탈위계한 창작환경’을 만들기 위한 9가지 항목이 도출되었다. 이는 구체적으로 1.새로운 단체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환경, 2.평등한 콜렉티브가 아님을 인지하는 것, 3.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고 사람이 직급이 되지 않는 환경, 4.탈위계에 대한 환상이 존재하지 않고 위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창작 환경, 5.소속을 강요하지 않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 6.높은 직급일수록 책임을 감수하는 단체, 7.지침서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구성원 안에 다수의 상담원이 있는 환경, 8.공동 창작 등 새로운 제안과 시도가 열려 있는 환경, 9.지금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으로 정리되었다.

 

‘탈위계와 조직의 필요성’을 주제로 한 토론에는 사진, 영화, 문학, 연극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5명이 참여했다. 먼저 각자의 활동 영역에서 위계가 작동한 순간을 공유했다. 문학 판에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거대 출판사와 문예지, 학연으로 연결된 심사와 청탁 문화, 미술계에서 교수와 선배로 이어지는 위계 등의 사례가 나왔다. 자생적으로 생긴 조직이라도 주위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위계가 생길 수 있지만, 새로운 창작 기회가 제공된다는 측면에서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했다. 조직의 장점으로 서로 영감을 주고 시너지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이 혼자 고민할 때보다는 많아진다고 말한 참가자도 있었다. 위계에서 벗어난 건강한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의견으로는 ‘위계에 대항할 수 있는 풀뿌리 조직이 필요하고, 하나가 아닌 복수의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것이 좋다’,‘사소한 약속이라도 조직에서 만들어지는 것 중요하다’, ‘관·단체들의 폐쇄성과 보수성에 대한 제도와 규정 변화가 필요하다’ ‘탈위계가 힘들면 ‘덜위계’부터 시작해보자’ 등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최근 콜렉티브나 거버넌스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으니 사례들이 아카이빙 되어 공유되고, 자발적인 거버넌스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가장 많은 8명이 참가한 ‘서열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토론에서는 서열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경력, 나이 등 복잡한 요소가 뒤섞여 있고, 조직이나 단체에서 승인된 서열과 경력과 유대에서 발생하는 암묵적 서열, 외부와 경쟁하는 개인 창작자로서 느끼는 서열과 공동으로 작업할 때 한 명의 구성원으로 느끼는 서열이 있다는 의견 등이 나왔다. 서열이 일으키는 문제로는 책임자가 책임을 지지 않거나 결과를 독차지 하는 경우, 서열이 위계로 작동하고 결정권을 독점하는 경우 등이 얘기되었다. 서열은 주요 현장에서의 경력과 수상 이력과 같은 사회적 공인에 따라 형성되고, 능력 중심주의 사고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부재하면서 굳건해지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최하위 서열인 ‘막내’라는 타이틀로 소속되면서 차근차근 인정받고 단계별로 올라가는 데에서 오는 안정감이 있다는 긍정적인 면도 언급되었다. ‘서열은 활기 넘치는 경쟁을 위해 필요하지만, 협력을 불안하게 하고 응집력을 약하게 한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공적인 서열이 사적인 자리로 이어지는 것, 소수에게 집중된 서열화된 권력이 사유화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누면서 토론을 마무리 지었다.

 

마지막으로 ‘공평한 기회와 경쟁 체계’를 주제로 한 그룹에는 7명의 예술인이 참가했다. 연극, 음악, 시각예술 등 분야도 다양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에서 골고루 활동하고 있어 서로의 창작 환경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원사업의 심사 과정은 참가자들과 가장 밀접하고 민감한 주제 중 하나였다. ‘평등하게 기회가 주어지고 모두 선정 결과가 비합리하고 부조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심사위원은 전문가 중심이 아니라 예술가, 관객, 동료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은 보이지 않는 벽을 느끼고 있고, 기회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잘못된 상황을 인지하고도 불이익을 받을까 봐 묵인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었다’, ‘장기간 독점적으로 활동하던 예술가가 결국 심사위원이 되는 루트를 목격하면서 지역의 지원사업을 기피하게 되었다’는 구체적인 경험담도 들을 수 있었다. 코로나 이후 소규모 지원사업이 많이 생겨 지원을 받는 예술가는 늘어났지만, 규모가 큰 사업은 여전히 같은 단체가 선정되고 있으며, 소위 ‘고인 물’이 많은 지역에 비해 서울은 상대적으로 사업 진행과정이 투명해 보이고 상세하게 안내해준다는 차이가 있다고도 전했다. 선정된 기획안 공개 시 매뉴얼화의 위험, 지원사업 모니터링을 강화할 경우 결과물만을 내기 위한 예술이 될 가능성, 동료평가제로 인한 인신공격과 같은 폐해 등 제안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고민까지 폭넓은 의견이 개진되었다. 지금 당장 시스템을 바꾸기는 힘들지만 열린 토론회가 확산되어 지역에도 많이 알려지고 예술가 스스로 인식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마무리 되었다.

 

주제별 토론이 끝난 후 각 그룹에서 주고받은 이야기와 의견을 모더레이터가 요약해 전체 참가자들과 공유한 후 참가자들의 소감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 참가자는 “그동안의 작업을 돌아보고 주변 사람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연극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라인과 위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고 전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앞으로 서열이나 위계에 관해 분야를 나눠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 해보자고 제안했으며, 당장 깰 수 없더라도 계속 이야기하면서 금을 내면 언젠가 바뀔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자리였다고 의미를 부여한 참가자도 있었다. 김서령 운영진은 “오늘의 토론이 문제점을 찾고 질문을 해나가는 과정에 단초가 되면 좋겠다”면서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유모리 진행자는 “빠른 시일 내에 탈위계·성평등을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이것이 가능하려면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같은 목소리가 겹겹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바뀌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며 앞으로 열릴 토론회에도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는 인사로 1차 토론회를 마무리 했다. 2차 토론회는 ‘화장실 빅뱅: 공공공간의 성평등과 다양성’을 주제로 9월 27일 월요일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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