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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E: 넌> 2021 프로젝트 보기/지원사업<NONE:넌> 기록+리뷰

<NONE:넌> 참여 후기 | 최소예산신청자의 자율예산제 체험기 - 최서윤

2021. 9. 30.

쓴이: 최서윤 (시민교육에 관심이 많으며, 단편영화감독, 기획자, 작가로 활동중)

 


<NONE : 넌> 지원사업 참가팀 중 일부에게만 이 주제의 원고를 청탁했다고 알고 있다. 그중 하나가 나다. 조금 궁금했다. 청탁 이유가 뭘까? 담당자에게 물어보면 ‘간단한’ 답을 들을 수 있겠지만, 그 전에 충분히 짐작해보고 싶다. 떠오른 가설은 다음과 같다. 혹시 내가 가장 적은 예산으로 참여하기 때문은 아닐까?

5월, 청년예술청 홈페이지에서 공고를 봤다. “성평등·탈위계 문화조성을 위한 (커뮤니티형) 지원사업 <NONE:넌>은 문화예술계 내 모든 과정에 남아 있는 편견과 혐오를 끊어내” “다양성을 탐구하고 교류하려는 의지를 통해 서로를 확인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문화예술계 내 성평등·탈위계한 문화를 확산하며 안전한 문화예술환경을 정착”시키는 취지의 사업이라고 했다. 이건 못 참지!

‘문제 일으키지 않고 재밌는 사람 되는 법’이라는 강의안을 통해 ‘2021년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전문강사’로 위촉된 바 있다. 그러나 활발한 강사 활동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다가오는 기회가 없다면 스스로 뜻을 펼칠 자리를 만든다는 지향으로 살아왔다. <NONE:넌>을 통해 강의안의 문제의식을 확장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마감을 앞둔 일이 쌓여 있었고, 차례로 쳐내고 나니 <NONE:넌> 지원마감 세 시간 전이었다. 서둘러 서울문화예술지원시스템(scas.kr)에 가입하여 부랴부랴 지원서를 써냈다. 문제는 예산안 짜는 일이었다. 최소지원금 액수 이상 예산안을 작성하지 않으면 지원서도 제출할 수 없는 디지털 시스템이었다. 그 때문에 최소액수 300만원에 맞춘, 치밀하지 못한 예산안을 급히 마련했음을 고백한다.

다행히 내가 지원한 프로젝트 ‘성평등탈위계가 YES잼이다(이하 ‘YES잼’)’는 최종심의를 통과했다. 물론 아직 과제는 남아 있었다. 커뮤니티 프로그램과 예산분배토론이 그것이다. 최종 지원대상 14팀은 본인들이 제출한 예산안을 다른 팀에게 설명하고 상호토론을 거쳐 각 팀의 지원금을 확정해야 했다. 이런 식의 지원금 분배는 나로서는 첫 경험이었다.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커뮤니티 프로그램의 시작인 OT 때부터 분위기는 뜨거웠다. ‘위계 인지 감수성’이라고 해야 할까? 참가자들의 감수성이 보통이 아니었다. 일정에 대한 의견 수렴 없이 주최 측이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방식에 과연 위계가 작용하지 않았는지, 참가자들의 날카로운 지적이 잇따랐다. 결국 OT 이후 일정에 대한 투표가 이뤄졌고, 그 결과에 따라 추후 일정은 최대한 많은 인원이 참여할 수 있는 시간대로 조정됐다. 그뒤 ‘수다회’, ‘안녕회’, ‘허심탄회’ 등으로 각자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와 질문·답변, 토론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를 쌓았다. 적어도 소회의실에서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눈 팀들과는 무언가가 형성됐다고 생각한다.

대망의 1·2차 예산분배토론회는 8월에 있었다. <NONE:넌>의 총 사업 규모는 8500만 원. 참여팀의 예산 총합이 8500만 원을 넘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1차 예산안 총합은 635만6천 원 초과됐다. 어떻게 조정해야 할까? 모두 일괄적인 비율로 감액하는 방식은 가뜩이나 허리띠를 졸라매어 계획을 짠 사람들(나 포함)을 억울하게 만들 것이다. 만약 산출 근거가 구체적이지 않고, 비교적 방만하게 계획된 예산안이 있다면 그것이 수정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심지어 ‘YES잼’은 오히려 증액해야 할 상황이었다. 급하게 예산안을 짜다 보니 스터디 참여자들의 발제비 및 발표비용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예산 총액이 초과된 상황을 인지하면서도 증액 예산안을 들고 토론회에 참여하는 게 민망했지만, 관련 항목을 보강하기 위해서는 49만 원이 더 필요했다. 대신 기획이나 책자 편집에 대한 본인사례비는 포기했다.

8월 16일, 1차 토론회의 분위기는 ‘엄근진’ 그 자체였다. 예산 규모가 큰 팀일수록, 산출근거가 구체적이지 않을수록 엄격한 질문이 던져졌고, 설명과 답변을 위한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YES잼’의 예산안을 설명할 차례는 후반부에 있었기에, 긴장하며 때를 기다렸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내 설명을 듣고 나서 다들 추가 질문 없이 웃으며 넘어가서 맥이 탁 풀렸다(나중에 채팅창을 통한 질문 하나만이 있었다). 혹시 내 예산이 작고 귀여워서였을까? 하긴, 증액됐음에도 ‘YES잼’은 여전히 가장 작은 규모를 자랑했다(‘YES잼’ 다음으로 적은 액수는 440만 원이었고, 대다수 참가자들의 예산은 500만 원~600만 원대였으며, 가장 많은 지원금을 신청한 두 팀의 예산안은 1000만 원을 넘거나 육박했다).

8월 23일. 1차 토론 내용을 수렴한 2차 수정예산안을 들고 2차 토론회가 진행됐다. 2차 수정예산안 총합의 초과액수는 305만3800원. 초과액수의 반 이상이 줄어든 희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아직 더 줄여야 한다. 나는 총무라도 된 것 마냥 스트레스받으며, ‘모든’ 참가자들의 예산을 줄일 기세로 뜯어봤다. 

나와 다른 태도로 접근한 참가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모든 참가팀이 본인 사례비를 어느 정도 책정해야 한다며, 나조차도 포기했던 내 인건비를 챙겨(?)가라고 등 떠밀었다(솔직히 좀 감동받았다).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이끌어가며 이런저런 잡무까지 담당하는 이가, 정작 자기 인건비는 확보하기 어려운 모순적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반에 둔 것이다. 결국 나는 기획·편집 인건비 명목의 40만 원을 증액하여 389만 원(여전히 작고 귀엽지만, 소중한 나의 지원금…)을 교부받게 됐다.

최종 토론 결과, 각 팀의 예산 총액은 8500만 원에 맞춰졌다. 아름답다고도 볼 수 있는 결말이다. 대다수 참여자들의 성숙하고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한정된 총예산에 대한 인식과 이에 따른 양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다만 일부 참여자가 (사정이 있었겠지만) 예산토론회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거나 예산안을 회의 전 미리 공유하지 않아, 토론 시간 동안 충분히 해당 예산안을 검토하지 못한 일은 아쉽다. 더구나 여러 팀에게 의문을 갖게 한 예산안(전체 예산 중 인건비 비중이 두드러지게 높았고 인건비 산출 근거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상태였다)이, 결과적으로 예산 총합이 8500만 원에 맞춰지고 정해진 시간이 되었다는 이유로 충분한 검토와 토론이 이뤄지지 않은 채 덩달아 ‘수월하게’ 통과된 일은 부당하다고 느낀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팀도 이런 인식을 토론 과정에서 드러냈는데, 나중에 당시 상황을 전달받은 해당 팀은 불쾌할 수 있었겠다고 생각한다.

토론회의 일정을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일시로 잡았다면 아쉬운 일이 없었을까? 하지만 그렇게 일정을 정해 진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참여자들 모두가 적극성을 보이기 위해서 기관에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참가자들을 사전에 선별하려 노력해야 하는 걸까?

여러 질문이 떠오르지만, 청년예술청 운영단과 지원사업 담당자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낸다. 참가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평등한 커뮤니티를 위한 약속문>을 제정하고, 토론에 임할 때의 바람직한 태도를 주기적으로 환기하며, 다양한 디지털 도구를 이용해 참가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려는 ‘열심’을 여실히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와 같은 주제의 원고를 아카이빙하는 것일 테지? 우리의 경험과 문제의식이 모여 더 나은 문화예술환경으로 나아가길 희망한다. 나의 기록도 보탬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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