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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E: 넌> 2021 프로젝트 보기/지원사업<NONE:넌> 기록+리뷰

<NONE:넌> 참여 후기 | 제도를 함께 만드는 제도 - 루이즈더우먼

2021. 9. 30.

글쓴이: 오연진(시각 예술가, 여성 시각 예술인 네트워크 ‘루이즈 더 우먼’ 공동 설립자)



여성 시각 예술인 네트워크 ‘루이즈 더 우먼’은 올해 6월부터 〈LTW 그로스 워크샵: 코워커로서의 여성 예술가〉 프로그램을 주제로 청년예술청에서 주관하는 성평등·탈위계 문화 조성을 위한 〈NONE:넌〉 지원사업에 참여했습니다. 거버넌스 운영단에서 기획과 진행을 맡은 〈NONE:넌〉 지원사업은 공모의 내용만큼이나 그 방식에서도 다양한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본 사업에 참여하며 느낀 소회를 짧게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제도를 실험하기

〈NONE:넌〉 지원사업은 이전까지 제가 참여했던 기존의 예술 공모 및 심사 제도와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거버넌스 형태의 공동 운영단을 중심으로 사업 운영 주체가 구성되었고, 창작 발표 형식 외에도 연구, 리서치, 포럼, 네트워킹 등 사업의 주제와 관련된 모든 형태의 프로젝트를 지원 대상에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근래의 많은 지원 시스템에서 취하고 있는 형식이기는 하지만) 선정자 그룹을 중심으로 서너 차례의 커뮤니티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 역시 개인적으로는 생소한 방식이었습니다. 

사업 진행 기간 동안 지원 혜택을 받는 선정 팀의 입장에서, 동시에 예술인 커뮤니티를 매니징하고 있는 시스템 관리자의 관점에서 커뮤니티 프로그램과 예산 운용 방식 등을 살펴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NONE:넌〉 사업은 지원 프로젝트의 성격과 지원사업 시스템 간의 상호 조응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언뜻 당연해 보이기도 하지만, 사업의 테마가 ‘성평등·탈위계’인 만큼 이를 담당하는 운영 주체와 프로그램 진행 과정, 커뮤니티 문화 역시 동일한 목적을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 모든 사업 선정자들과 함께 ‘커뮤니티 약속문’을 공동 작성하고, 사업 진행 과정 중에도 선정자들의 의견을 최대한 민주적으로 수렴하고자 하는 노력을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문화예술계의 성평등·탈위계 문화란 

본 사업은 창작 발표 형식의 프로젝트만을 지원 대상에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조직문화 개선 및 구성원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기획된 ‘LTW 그로스 워크샵’도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LTW 그로스 워크샵’은 여성 예술인들의 협업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총 4주간 팀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여성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협업 역량 강화 워크샵을 진행하였습니다. 루이즈 더 우먼은 여성 예술인들의 협업에 대한 동기 부여와 역량이 성평등 문화 확산의 근간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만난 많은 여성 예술인들은 집단이나 팀 프로젝트에 대해 반감과 불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술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예술계 내의 많은 공동체와 제도 안에서 능력을 의심받고 끊임없는 자기 증명의 굴레에 놓이는 상황을 감안할 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개인 활동에 몰입해 조직적 움직임을 등한시하는 경향은 여성 중심 네트워크 형성에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LTW 그로스 워크샵’은 여성 예술인에게 긍정적인 협업 경험을 심어주고 팀 매니징 역량을 키워 더 많은 여성들이 루이즈 더 우먼 및 예술계 내의 많은 조직 안에서 주도적인 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할 것을 장려하였습니다.  

〈NONE:넌〉 지원사업에서 지원 가능한 프로젝트의 성격을 폭넓게 설정한 부분은 결과적으로 저희와 같은 프로그램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예술 지원사업 제도에서 창작 환경과 문화에 주목한 것은 바람직한 경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술계 문화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변화는 관련 법안 제정 등 보다 구조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예술인들 스스로 창작의 내용뿐 아니라 창작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대안적 공동체 문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의 개설 및 적용은 〈NONE:넌〉 사업에서뿐만 아니라 예술인 모두가 구성원으로서의 책임 의식을 가지고 고민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자율적 참여와 시스템 관리의 경계에서

앞서 언급했듯 〈NONE:넌〉은 신생 사업인 만큼, 여러 새로운 시도를 실험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모든 선정 팀은 세 차례의 커뮤니티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코로나 방역지침으로 인해 현장 참여가 아닌 줌(Zoom) 기반 온라인 프로그램으로 대체되었지만 14개 팀의 활발한 참여 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커뮤니티 프로그램에서는 각 팀 소개 및 라운드 테이블 형식의 이벤트가 진행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커뮤니티 운영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커뮤니티형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의 양적인 성과보다 참여자들의 질적 경험을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참여자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새로이 알게 되었는지보다는, ‘얼마나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갔는지, 프로그램이 종료된 이후에도 참여자들 간에 관계가 형성되었는지를 기준으로 만족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운영단 측에서 프로그램 진행 전 소그룹별 관심 주제를 설정하고 행사를 진행한 부분은 좋은 시도로 느껴졌습니다. 로테이션 타임을 줄여 소그룹별 대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논의 주제가 심화될 수 있는 모더레이팅이 수반된다면 보다 풍부한 교류의 장이 마련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모든 선정 팀이 참여하는 ‘예산 분배 토론회’를 통해 지원 금액을 산정하는 점이었습니다. 운영 주체의 일방적인 심사가 아닌 민주적인 의사 결정 절차를 거쳐 지원금을 배정하려는 시도는 분명 의미 있는 노력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사업을 수행하는 입장에서는 우선 정확한 지원금 액수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또한, 모든 팀의 예산 항목별 타당성을 검토하고 판단하는 과정에 반드시 모든 선정자가 개입해야 하는지 역시 의문이 들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사업인 만큼, 문화예술계 내 다양한 창작 주체와의 교류 및 관계 형성에 좀 더 무게를 두는 방향성이 필요해 보입니다. 충분한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과 같은 민감한 사안을 논의해야 하는 구조는 참여자에게 불필요한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차기년도에 동일 사업이 진행된다면 1팀당 지원 가능 금액의 상한선을 지정하고 (‘1팀당 최대 지원액 X 선정 팀의 수’는 총 지원금 예산보다 적을 것) 지원금 예산 차액의 사용처를 함께 고민하는 방향을 제안해봅니다. 

전반적으로 청년예술청 〈NONE:넌〉 사업은 사업 운영 주체와 참여자 간의 위계를 완화하며 ‘제도를 함께 만들어가고자 하는’ 성격이 두드러졌습니다. 제도와 그 구성원의 경계가 불분명한 문화예술계에서 이와 같은 시도는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도를 운영하고 유지해나가는 책임을 운영 주체와 구성원들이 어디까지 나눠 가질 것인가에 대한 어려운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모든 구성원에게 제도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것, 운영 및 관리의 책임 주체가 효과적인 제도를 고안하고 개선해나가는 것 사이에는 때로는 길항적이고 때로는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후자가 성립할 수 있으려면 구성원은 조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입장을 개진해야 하고, 관리 주체는 자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책임을 방기하지 않고 시스템 개선에 대한 고민을 거듭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쌍방향의 실천을 바탕으로, 문화예술계 창작 주체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는 청년예술청의 시도가 바람직한 상향식 제도문화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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