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NE:넌 무엇을?/[아투워크] 예술_노동: 나와 당신의 예술+x= 노동

예술_____노동: 나와 당신의 예술 +x= 노동 / 강연(1) 오경미

2022. 12. 27.
“예술인에게 예술은 노동일까요?”

 

예술인의 노동은 창작과 분리할 수 없고, 미적 가치를 생산하는 특수한 형태입니다. 하지만 예술은 제도 안에서 노동인가에 대한 논란이 존재하면서 예술가에 대한 불분명한 지위를 가져옵니다. ‘아투워크’ 그룹은 노동으로서의 예술에 대한 논쟁을 다각도로 짚어 보면서 장기적으로 담론을 생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2022. 11. 26(토) 청년예술청

예술_____노동: 나와 당신의 예술 +x= 노동은?

이론, 활동, 창작 세 가지 분야 연사들의 강연과 대담 그리고 사용자 참여형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백과’를 기반으로 ‘예술 노동’ 사전 편찬 활동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어렵지만 예술인들에게 꼭 필요한 이 주제에 관해 다양한 관점을 살펴보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장을 열고자 했습니다.

 

아투워크(Artowork)는?

예술 노동에 대해 탐구하며 이를 공유하고 싶은 다양한 장르의 창작자 및 기획자로 구성된 팀입니다.


아투워크의 연구를 바탕으로 구성한 강연 프로그램과 사전 편찬 퍼포먼스에 대해 소개해드립니다.

 

1강. 이론/ 예술은 노동이다. 「예술 노동 이해하기: 일반화할 수도, 특수화할 수도 없는 그 곤란함에 대하여」 

강연자 오경미 미술이론을 전공하고, 문화정책으로 박사 논문을 썼으며 문화예술노동연대 사무국장 활동을 했다. 이번 강의에서는 예술노동 논쟁을 정리해보고, 예술인권리보장법 실시 이후 예술인들의 지위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예술노동의 의제 형성과 논쟁의 시작 - 예술 활동을 위한 공정한 사회적 분배에 대한 예술인들의 요구 

 

1. 2003년 조각가 구본주의 귀갓길 교통사고 사망 보험금

피해자 측은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서 피해자 과실 25% 미만, 그리고 노동부가 발간한 임금구조통계보고서에서 예술전문가 5~9년의 경력과 65세 정년을 인정받았다. 가해자 측 보험회사는 사망보험금을 축소하고자 불투명한 예술활동 대금의 지급 출처를 문제 삼아 인테리어 디자이너 정년으로 60세까지 인정한 고등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으며, 피해자 과실 70%를 주장했다. 이에 유가족과 미술인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집단 대응을 하자 가해자 측 보험사는 유족 간 조정을 통해서 원심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사건이 종결했다.

 

이 사건은 예술인들이 지금까지 사회적 타자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고 그 충격도 컸다.

법원 판결 하나로 예술가로서 그간 공들여 쌓았던 경력이 부정당할 수 있고, 경제적인 문제와도 직결되는 것이 바로 예술인의 삶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2년간 지속된 법정 공방은 2005년 10월 31일 원심판결을 따르는 조건으로 종결되고, 법원 앞에서 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열어 예술이 사회적 노동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 절실함을 언급하지만 이후 활발한 논의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2.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사망과 2012년 예술인소셜유니온 결성 

최고은 작가가 경제적인 문제로 인한 생활고와 지병으로 죽음을 맞은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예술인들이 가난과 배고픔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다수의 예술 전공자가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비정규직이 증가하면서 2012년쯤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가난하지만 예술을 하고 싶고, 그렇다고 예술과 노동을 병행하기 어려워진 현실이 예술인들은 부당하고 억울하다고 깨닫는다. 최고은 작가의 죽음으로 촉발된 의제는 2012년 예술인소셜유니온 결성으로 이어졌다. 

 

 

3. 2013년 예술노동 의제의 본격 시발점, 미술인생산자모임과 이후의 흐름 

미술인생산자모임에서 예술인복지법에 근거해 작가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의 제도화를 제안한 이후 다양한 양상이 등장한다. 이후 2014년, 두산갤러리에서 열린 <본업: 생활하는 예술가>라는 전시에서는 예술인 스스로 내가 하는 일이 노동인가 예술인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많이 출품되었다. 당시 서동진(계원예술대 융합예술학과 교수, 문화평론가)은 예술을  노동이라 보는 것에 반대하여 이 전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쓰기도 했다. 

참고: [문화와 삶] 노동하는 예술가 / 경향신문  http://naver.me/xGifVIg9 

 

서울문화재단은  2014년 12월 27일 <서울시창작공간 국제심포지엄-노동하는 예술가, 예술환경의 조건>을 개최했다. 예술가의 가난이 자연스러운 것은 구조적 모순에서 기인했기 때문에 예술을 노동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예술 노동 개념의 대표적인 반대론자인 서동진 교수는 신자유주의경제의 단면적인 시스템이 미술계까지 침투했으며, 예술이 자본주의 노동 문제를 응시하지 못함과 동시에 예술이 임계 지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화 파탄의 상황이라 비판했다. 정강산(독립연구자)는 역시 동의하면서 노동은 삶의 재생산을 위해 상품을 만드는 무의식적이고 강제로 시행하는 활동이지만 예술은 자유롭고 의지적인 활동이다. 또한 예술과 노동은 모두 신체적 노동을 수반하지만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주장으로 예술노동을 반대했다. 여기에 대해 권혁빈(미술인생산자모임)은 노동과 예술의 위계화를 거부한다고 반박하고, 다시 정강산은 모든 이가 노동자가 되는 것이 피폐한 삶의 조건을 타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다시 반박했다.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을 노동으로 명명하고 여기 머리를 들이밀려고 한다면, 예술가는 착취당한 패배적인 노동가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4. 2015년 이론가들의 논쟁은 종결되었지만..

이후 이론가들 사이에서 예술 노동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종결되었다. 하지만 현장 예술인들의 노동인권이 너무 처참했기 때문에 문화예술노동연대 활동가들은 계속해서 예술은 노동이라는 의제를 주장하며 노동인권을 보호받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예술인의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한 법제도 확립을 요구하면서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2021년 제 21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네마프2021) 부대행사로 예술노동을 다시 개념화해보고 쟁점을 짚어보는 심포지엄 <예술과 노동, 다시 보기>가 개최되기도 했다. 이어 2022년 서동진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논문으로 정리해서 발표했다. 서동진 교수의 <예술가는 언제 파업하는가 - 예술과 노동 그리고 상품>(한국예술연구, 2022 제36호, 53~74쪽) 논문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연구의 목적]
예술가 노동자성의 인정은 동시대 예술가들의 중요한 사회적 요구였으며, 예술인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의 사회적 생존을 방관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의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을 노동으로 인정해달라고 하는 것은 예술가의 노동자성이 예술가의 생존과 관련한 긴박한 요구임을 수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예술적 실천을 둘러싼 근본적 딜레마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 연구에서 밝히고자 한다.

[연구의 틀]
‘절대상품’이란 개념을 통해 예술의 자율성/타율성을 변증법적으로 사고한 아도르노의 사상을 틀로 연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논문의 주장]
예술의 자율성은 자본주의 사회를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예술이 다른 사회 현실로부터 분리된 자율적 상태를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자율적 상태에서 제작된 예술작품은 그 어떤 사용 가치도 가지지 않는 오직 교환가치만을 가지는 절대적인 물신, 절대상품이다.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없으며,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는 것처럼 만들어졌다고 해도 절대상품인 것이다. 예술의 자율성을 보전하는 것은 상품 생산이 지배 하는 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가능성을 가지게 해 주는 것이므로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동시에 예술의 자율성 역시 가성이며 허구이자, 이데올로기이므로 이를 타파해야 한다. 예술 작품을 생산하고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비판하고 그것을 공고히 하는 이데올로기를 타파할 때 예술파업이 일어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1960∼70년대의 흑인비상 행동문화연합(Black Emergency Cultural Coalition)이나 미술노동자연합(Art Workers Coalition)을 필두로 1990년대의 스튜어트 홈이 주동한 예술파업(Art Strike), 최근 사례로 2017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미국 작가 코코 푸스코(Coco Fusco)가 호소한 예술 파업을 예시로 들었다.

반면에 예술을 노동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것은, 예술인들이 사회나 법, 제도 등의 구조에 의해 자신을 승인받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의 현실에 의해 규정되는 예술의 타율성을 체현하는 사례로 보았다. 또 예술이 노동이라 주장하고 규정하고자 하는 예술인들은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허위 의식이라고 비판한다. 예술이 노동이라는 주장은 외부 현실에 의존해 자신을 규정하려 시도이기 때문에 그 예술작품은 절대적 가치를 가지는 절대상품이 될 수 없으므로 상품에 불과할 뿐이고, 다시 말해서 예술이 노동이라는 주장에 의해서 만들어진 예술작품은 상품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비판에 실패하고 만다는 것이 이 논문의 골자이다.

>> 논문에 대한 강연자의 의견

논문에 따르면 예술작품은 그 어떤 사용가치도 가지지 않는 절대적인 물신이다. 예술을 노동으로 규정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를 타파할 방법을 예술이 상실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많은 질문을 낳는다. 자본주의 타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은데 이것이 체제의 전복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리고 절대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타파되는 것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배달노동자는 라이더, 미용사는 헤어디자이너라고 표현하는 허울 좋은 이데올로기는 결국 노동을 하는 당사자가 이 노동이 전혀 유연하지 않고 도리어 혹사되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고발하게 한다. 예술인들이 예술을 노동이라고 규정하려는 것은 자본이 예술인의 노동을 저렴하게 혹은 무임승차 하는 것에 대한 투쟁의 방편으로 노동자성을 승인받고자 하는 것이다. 제도를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자본주의를 바꾸는 도전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영화, 만화, 드라마 등 예술적 형식도 절대상품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자본주의 타파가 예술가들에게만 부여되는 역할인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네마프2021 심포지엄 발표자였던 신현진, 최인이, 정윤희, 고동연의 발표를 이어서 살펴본다.

기존 예술이 노동이다, 아니다 하는 양분화된 논쟁에서 벗어나 또 다른 층위의 좀 더 발전된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 심포지엄에서는 문화예술 활동이 매우 다양하므로 이를 법체계에 포함할 때 기존의 것에 구겨 넣는 방식은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이전의 예술노동 논쟁과 비교해보면 논의가 훨씬 풍부해졌으며. 예술인의 위태로운 삶을 인정하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구체적인 논의로 발전하고 있다.

신현진: 우리는 미술인이기도 하고 다른 시점과 상황에서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예술을 실천하는 동안 우리는 작가의 역할을 하는 시간도 있지만 금전적인 보상을 받아야 하는 활동 시간도 있다. 우리는 하나만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미술계 안에서 노동은 많다. 다만 은폐되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고 동료나 선배, 기관의 예술 실천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그때 그게 내 작품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면 임용 노동이다.

최인이: 고용된 노동만이 사회보장 체제 영역에 포함될 수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예술인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자본주의적 상품시장을 통한 생존의 가능성까지 점점 낮아지는 게 현실이다. 문화예술노동, 창의적인 노동은 고용 관계에서 벗어나 있지만, 법적 제도가 고용 관계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예술 활동을 노동으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고용 관계 개념에 기반하여 규정 가능성을 타진하기보다 예술 활동 결과물의 판매, 유통, 소비의 과정이 기존의 제조업 상품 판매 및 유통 과정과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점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일이 필요하다. 

정윤희: 예술인은 저임금, 불확실한 고용 관계, 고용불안, 장시간 노동, 임금체불 등의 상황에 처해있다. 예술인 존재의 특정 이슈와 장르별 차이에 따른 노동행위의 특성, 고용관계의 특수성을 배제하고 기존 노동체계의 교육, 지위, 노동시간, 소득 등의 기준으로 편입시키는 것은 열악한 예술인들의 사각지대를 더욱 키울 수 있는 구조이다. 

고동연: 예술가는 누구인지, 예술가를 장르, 경력, 지역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며 시대적으로 계속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논의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문화예술인의 노동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찾으려 할 때 항상 맞닥뜨리는 문제가 사용자와 노무를 제공하는 자 사이의 확실한 고용관계 여부이다. 즉 근로자성,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 이유는 한국의 노동법이 근로기준법을 중심으로 체계화되어 있고, 근로기준법은 사업장이나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 특히 정규직 근로자만을 보호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예술인을 포함한 비정형 노동을 수행하는 이들이 맞닥뜨리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 개정 절차와 오랜 시간이 든다.

 

정규직 근로자 수가 급감하고 있고, 플랫폼 기업 등 사업장이 없는 사업체가 증가하고 있어 비정형 노동자가 증가하는 추세이므로, 정규직 보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의 노동법 체계는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그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근로기준법 제2조의 1항에서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하고 있어 플랫폼 노동자나 문화예술인은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존에 근로자 정의 조항을 대폭 확대하자는 요구도 있었지만, 근로기준법은 변하지 않았고 정부는 별도로 비정규직 근로자를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호하는 등 보완하는 법 체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차별당하지 않고 정규직 전환을 장려하고자 만들어진 비정규직 보호법은 고용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보다 비정규직 상황 악화만을 가져왔다.

 

 

5. 예술인권리보장법의 등장
예술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제인 예술인권리보장법도
근로기준법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만들어졌다.

 

‘예술인복지법’은 예술인도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도록 하겠다는 조항이 있었으나 근로기준법에 혼란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빠진 채 제정이 되었다. 예술인노동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지 못하고, 예술인복지재단이 예술인복지법에 의해서 지원사업을 만들어 지원금 또는 긴급 생활 자금을 주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타의 예술지원사업과 큰 변별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법은 모법, 상위법 등 토대가 될 수 있는 조항을 두어 일관된 법체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연계성이 없다면 사실 법이 있더라도 그 법은 동떨어진 섬처럼 되기 쉽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이 그런 예로 볼 수 있다. 블랙리스트 사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제정되었으나, 기존의 어떤 법도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예술인 다수는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일 대부분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므로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게 된다.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서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없는 불안정한 생활과 예술 활동을 병행한다. 예술 활동을 이어 나가려면 예술 지원금에 의존하게 되는데, 블랙리스트 사태는 지원금에 의지하는 예술인들을 그 대상에서 제외했다. 결국 블랙리스트 사태는 예술인들의 열악한 처우와 직결된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 예술인권리보장법이다.

하지만 여기에 예술인들의 노동인권을 보호하는 조항이 필연적으로 들어가야 함에도 노동법, 비정규직 등 노동 관련 법이 전혀 준용하지 않고 빠져있다. 그래서 섬처럼 고립된 법이며, 은근하게 예술인이라는 직업을 사회에서 분리한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이라 본다.

 

그러면 반대로 근로기준법 체계로 문화예술인을 포섭하는 것이 마땅한가? 

네마프21 심포지엄에서 나온 것처럼 모든 예술 활동은 다양하여 단일화할 수 없고, 심지어 동일 분야 내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생산, 유통, 소비의 과정이 다를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근로기준법 체계로 예술인을 편입시키는 게 어려울 수 있다. 이를 무시하고 근로기준법에 포함시킨다면 법에 따라 어떤 예술인은 보호받고, 어떤 예술인은 누락되는 차별도 발생하게 된다.

[예시 1. 방송과 영화]
방송사와 제작사, 프로듀서, 감독, 스태프 등 직무를 수행하는 인력으로 구성된다. 방송사와 제작사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으면서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방송 연기자들도 최근 노동자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방송사가 최대 사용자라는 인정을 받았으며 노무 제공자들과 주기적인 교섭을 한다. 단체교섭을 해서 출연료 협상을 하거나, 밀린 출연료도 받아 낸다. 반면 혼자 음악을 제작하고, 음원을 만들어 플랫폼에 업로드 하는 싱어송라이터의 경우, 생산 및 유통 과정에서 이 사람의 노무를 직접 지시하는 사용자가 없다.
[예시 2. 웹툰]
제작 과정을 분업화하고 대량생산 하는 방식으로 웹툰을 제작해 플랫폼에 납품하는 업체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선 따는 사람, 채색하는 사람, 콘티 짜는 사람 등으로 따로 분업하면 생산 속도가 더 빨라지기 때문에 메인 웹툰 작가들은 이러한 역할을 할 사람들을 따로 고용한다. 플랫폼과 직접 계약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웹툰 CP(Content Provider, 콘텐츠 제공업자)에 비정규직으로 소속된 작가도 있고, 똑같은 일을 독립된 스튜디오로 수주받아 용역으로 수행하는 작가도 있다. 웹툰 플랫폼은 소속 작가를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프로듀서가 있고, 이들이 얼마나 일을 배분하고 지시하느냐에 따라 노무 제공에 대한 사용 종속성이 성립된다.

이렇게 한 분야 안에서도 다른 시장이 존재하듯 분야별로 다른 산업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문화예술계의 특징이다. 애초에 정규직 근로 인력을 기준으로 설계된 근로기준법 등의 노동법 체계는 예술인에게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예술인에 대한 다양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는 것이다. 

 

 

6. 예술인 고용보험법

예술인의 특수성을 고려한 특례법으로 만들어졌다. 별도의 법처럼 보이나 근본적으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정의 조항을 토대로 설계된 고용보험을 따르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사업주에 대한 근로자의 종속성을 밝혀서 근로를 인정하는 체계이다. 예술인 고용보험은 예술 분야의 특이성은 고려했지만, 사업주에 대한 근로자의 종속성을 밝힌다는 점에서 근로기준법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 같은 정책의 설계는 예술지원사업을 받아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는 동료예술인을 사업주로 설정하게 만든다는 문제를 가져온다. 예술인들이 지원사업으로 받는 예산의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현행 근로기준법 토대로 설계된 예술인 고용보험법에 따라 예산 규모와 무관하게 당연 가입해야 하고, 과태료를 피하고자 자기가 제작하는 작품에 소속하는 예술인들의 고용보험을 가입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현장에서 그냥 계약서를 쓰지 않게 되고, 결국 고용보험이 존재하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예술인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7. 대안

소득 중심의 사회보험 

문화예술인이 현장에서 마주하는 곤란은 저임금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고강도/고위험 노동, 임금 체불, 불확실한 고용 관계이다. 최저임금 보장과 소득 중심으로 사회보험을 인정한다면 전 국민이 사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설계되면 이 같은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 본다. 

 

문화예술 분야의 고용 형태는 다양하다. 누구와도 계약하지 않고 혼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반면 비정규직 웹툰 작가, 방송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방송 프로그램을 찍는 배우, 작가, 영화를 촬영하는 스태프처럼 고용 관계가 확실한 경우도 있다. 고용 형태가 다양하기 때문에 문화예술만을 위한 특수한 법적 제도나 정책을 설계하는 것도 최선의 대안이 아닐 수도 있다. 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정의 조항을 넓히자는 제안에 대해서도 범위를 넓힌다면 비정형 노동을 하는 이들은 최대한 포섭할 수 있지만, 자영업자 형태로 혼자 일하는 예술인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정의 조항을 넓혀도 보호받지 못하는 함정이 생긴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의 근로자라는 자격으로 사회안전망의 포섭 여부를 결정하기보다 소득이 있는 사람에게 모두 사회보험법을 제공하기를 제안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별 소득, 매출과 소득이 파악되어야 하고 세금 징수 체계가 바뀌어야 하므로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렇게 되면 전 국민 누구나 고용보험, 사회보험 등 확보할 수 있고 최소한의 안전망은 평등하게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예술인 노동조합 운영

사회보장제도가 튼실하게 마련되어 있어도 예술인의 불확실한 고용관계에서 오는 부당함을 막을 수는 없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 두텁고 탄탄하게 만들어져 있다. 정규직 근로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정직, 감봉 등 징벌을 할 수 없지만, 비정규직 보호법과 예술인보호법에서는 이 조항이 없다. 예술인권리보장법도 마찬가지로 예술지원사업에서 일어나는 차별행위, 부당행위에 대한 부분은 포함하지만, 비예술적인 활동에서 차별받은 것은 구제받을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노동조합활동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 문화예술 분야는 실질적인 사용자를 지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음악 분야를 예로 들면, 대중음악이나 아이돌 산업 분야는 굉장히 돈을 많이 버는 산업군인 데 비해 시장 규모가 다른 인디음악씬의 수입은 매우 적다. 영국에는 뮤지션유니온이 있고 클럽 공연료에 대한 요율표가 나와 있어 직접 출연료를 정하지 않아도 된다. 또 인디 뮤지션들은 뮤직 클럽과 일종의 운명공동체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 시장마다 임금을 보상하는 시스템도 다르고, 각 주체가 시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예술인들이 조합을 만들고 대처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책이 설계되는 과정에서는 예술인이 포함되지 못하고 연구, 행정 그리고 예술인들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업주들이 결정을 내리게 된다. 문화예술 노동조합이 있다면 그 논의 테이블에 직접 같이 앉을 수 있게 될 것이다.

 

 

 

QnA

Q:  예술인권리보장법 관련해서 예술인 조합을 이렇게 만들 수 있도록 법적인 근거가 생겼다. 그것과 노동조합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그 부분이 쟁점이었다. 예술인 조합이지 노동조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노동3법으로 보장된 조항이며 파업을 할 수 있는 권리, 쟁의를 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교섭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예술인조합은 그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그냥 예술인들이 조직적으로 단체를 결성할 수 있다는 정도라 노동인권을 보장받기 위해서 조직화하여 단결된 행동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실 기업들은 노동자가 파업하면 계속 노동자들한테 손해배상을 물리고 있다. 노동3법에서 파업은 합법적인 것임에도 기업들은 본보기 식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몇십억~몇백억 손해배상 소송서를 받아 들면 노동조합은 위축되게 한다. 이를 보여줌으로써 파업을 하게 하려고 하지만 사실 파업은 법적으로 보장된 것이다. 그런데 예술인 조합은 그런 보장을 받을 없다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