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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E: 넌> 2021 프로젝트 보기/확성기 3차 : 돌아오는 가해자

3차 토론회 현장 스케치

2021. 10. 25.

릴레이 토론회 <확성기 : 확장하는 성평등·탈위계 이야기>


3차 : 돌아오는 가해자 

 

기록: 전민정

 

릴레이토론 <확성기>의 3차 토론회 ‘돌아오는 가해자’는 10월 4일 오후 2시부터 약 2시간 30분 정도 진행되었다. 유튜브 생중계가 아닌 줌(ZOOM)에서 열려 사전 신청을 한 참가자만 접속할 수 있었다. 사업 관계자를 포함해 약 50명이 토론회에 참가했다. 주진행자는 전강희 드라마터그가, 보조진행자는 청년예술청 사업운영단인 김수희 연극연출가가 맡았다. 전강희 진행자는 “2018년 문화예술계 미투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제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에는 각자 겪은 폭력의 경험을 이야기해서 피해자임이 입증되어야 발언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후 정돈된 언어로 상황을 이야기하며 다양한 담론이 나왔다. 이제 가해자들이 돌아오고 있는데, 이들과의 작업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 냉정하게 이야기해본 적이 있는지를 질문하며 포문을 여는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었다”고 토론회의 취지를 설명했다.(토론회 소개

그간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하거나 고민해온 6명이 발제자로 초대되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2019 대학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신상숙외, 국가인권위원회, 2020)’(다운로드)에 참여했으며, 김박나영 미국변호사는 한국의 반성폭력 여성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지만, 미투 운동 당시에는 한국에 거주하지 않아 미국의 사례를 공유했다. 김화용 미술작가는 미투 이후 미술 분야 여성 예술가의 성폭력에 대해 발언하는 여성예술인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김윤진 안무가는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위드유에서 지난 2년간의 무용인 성폭력 관련 연대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의 손가영 기자는 미투 운동 관련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가해자의 현장 복귀 사례를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엘리펀트룸의 김기일 연극연출가는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지만, 단체보다는 개인 창작자로서의 생각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토론회 발제자들은 그간 한번도 다뤄진 적 없던 쉽지 않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 본격적인 토론회의 시작에 앞서 ‘토론회 참여를 위한 약속문’은 김수희 연극연출가가 대표로 낭독했다.


 

첫 번째 발제인 ‘대학을 중심으로 미투 운동 이후 가해자들의 현재’는 서울대 여성연구원에서 1년간 연구한 내용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미투 운동 관련 가해자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 해외에서도 가해자에게 가혹한 일이라거나 가해자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 명예 훼손이자 범죄로 인식되고 있었다고 전했다. ‘서사적 면책(narrative immunity)’ 기능을 하는 언론 보도는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저명하고 권위 있는 인사들의 명성과 업적을 보도하는 것 자체가 성폭력 책임에 대한 서사적 면책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유명인의 명예 훼손 자체를 처벌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져, 형사적 처벌을 받아야 함에도 보도로 인해 망신을 당했으니 언제든 돌아와도 된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조사 결과 대학은 명예를 중시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대학 이름을 노출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으면서 피해 경험을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피해자는 가해자와의 완전한 분리를 요구하지만, 약한 처벌만 이뤄지면서 사실상 분리조치도 안 된다. 대학의 부실한 피해자 보호 조치가 가해자는 쉽게 들어온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학교는 공동체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피해자는 가해자의 공동체였기 때문에 버림받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몇몇 피해자는 학교를 떠나는 선택을 했다. 피해자는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가해자는 변한 게 없다는 것이 고통의 원인이었다.” 마지막으로 가해자가 돌아오는 공동체는 피해자가 겪은 공동체와는 다른 공동체여야 하고, 가해자를 잠시 치워 문제를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자체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제1_김수아 교수_대학을 중심으로 미투 운동 이후 가해자들의 현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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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김박나영 변호사의 ‘복귀하는 가해자, 박수치는 사회: 미국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발제에서는 미국 문화예술계의 미투와 현재의 근황을 전하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할리우드에서도 형사 처벌과 관계없이 대부분 복귀한 가해자에게 호응해주고 있고, 감옥에 있는 경우도 유명 변호사를 선임해 성폭력 가해에 비해 낮은 형량을 받았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돌아온 가해자들이 성소수자, 아시아 남성, 인신매매 등에 대한 발언을 하는 식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오프라 윈프리가 문화예술계 성폭력 피해를 지원하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결성한 단체 타임즈업(Time's Up)은 불과 4년 만에 조직이 실존적 위기에 처했다고 전했다. 2019년 2월에는 대표의 30대 아들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가 나와 대표가 취임 4개월 만에 사임했고, 2020년 1월에는 힙합계 거물에 대한 피해자가 나왔는데 이 거물이 오프라 윈프리와 연관 있고 타임즈업에 기부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인 2021년 8월에는 현직 대통령 조 바이든과 뉴욕 주지사인 앤드류 쿠오모에 대한 미투가 제기되었는데 타임즈업에서 이 정치인들에게 조언을 해주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표가 사임했다. 발제의 끝에는 ‘미투 이후 가해를 가능하게 했던 위계적 권력구조는 변했는지, 미투와 형사처벌은 가해자가 갖는 구조적·특권적 권력을 박탈시켰는지, 공동체는 바뀌었는지, 미투 운동은 이어지고 있는지, 지금 누구든지 안전하고 자유롭게 창작활동에 임할 수 있는 세상인지, 정치적 상황은 어떤지’라는 질문을 남겼다.

 

발제2_김박나영 변호사_복귀하는 가해자, 박수치는 사회_미국 문화예술계 폭력 사건을 중심으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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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미술계 성폭력 대응의 공통분모’를 주제로 발제한 김화용 작가는 “미투 이후에도 작년과 올해 미술계에 많은 일이 있었다. 어떤 이유로 반복적으로 문제가 생기는지 예술계의 시스템, 환경, 조건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서두에서 밝혔다. 2020년 Y작가 성폭력 사건의 공론화 과정에서는 프리랜서 예술가가 겪은 성희롱이 공적 제도 안에서 도움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고 했다. “젊은 예술가가 서울문화재단(이하 재단) 청년예술청 사업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예술감독에게 겪은 성폭력 사건은 공론화로 알려졌지만 피해자가 처음부터 공론화를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 피해자는 2020년 1월 재단 사업 참여를 포기하고 진정서를 접수했지만, 재단은 공공기관임에도 신고 후 처리 체계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고 상위기관인 서울시도 소극적으로 해석했다. 공론화 이후 연대 서명과 단체 입장문이 발표된 후에야 재단은 대표이사와 이사회가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공동대책위원회를 마련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의 입장 발표도 이어졌다.” 김 작가는 피해자는 공식 절차를 따르려고 했음에도 공론화를 하지 않으면 일이 이어지지 못하고 이후 답이 나오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전했다. 김 작가는 재단과 예술위의 인정과 투명한 사과와는 달리 이 일로 문을 닫은 예술기관P의 해결책에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공동체의 문제를 내부에서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다른 영역에서 이런 일이 반복된다. 내부에서 폐쇄 수순을 밟은 후 홈페이지에 조용히 올린 글에도 성인지 감수성의 한계를 인정하는 내용은 없고 진보적이었던 기관의 역사에 대한 언급만 있었다.” 


이어 김 작가는 “가해자가 영영 돌아오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규정이 탄탄하게 받침이 된다면 가해자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제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간 여성 예술가와 연대해온 단체들의 노력과 성과로 공공기관과 예술 공간의 태도를 개선하고 제도와 규정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고 했다. 현재 재단과 문화예술계 연대자들의 노력으로 마련되고 있는 제도 개선안을 기대하고 있다는 말로 발제를 마쳤다.

 


다음 ‘후속 기사를 중심으로 가해 지목자의 현장 복귀 취재’를 주제로 발제한 손가영 기자는 “언론계도 성폭력 사건이 법의 판단에 종속되는 흐름이 있으며, 가해자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을 가혹하게 보는 시선도 있다”면서 언론 보도 등으로 공론화된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을 정리해 가해 지목자의 현장 복귀와 관련된 사건을 소개했다. 손 기자는 좀 더 쉬운 복귀의 예는 학교에 있다고 했다. 몇몇 교수들은 몇 개월의 정직과 감봉 정도의 징계만 받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교수직을 유지하다가 재판 중에 정년 퇴직하는 등 성폭력 사건에 안이한 학계의 모습이 확인되었다. 가해자의 윤리적인 복귀와 관련한 문화계의 고민으로는 3가지를 언급했다. 먼저 지난 5년간 성폭력 공론화 및 반대 운동에 힘이 있는 원로 작가와 예술인 협회의 적극적 조력은 전 분야에서 찾아볼 수 없고, 현장에선 가해자 동정론이 고개를 들고 있고, 진정 반성하는 가해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피해자와 조력자에 대한 역고소가 계속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폭력 근절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응한 대학도 거의 없었으며, 형식적인 사건 처리에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손 기자는 현장 활동가들에게 ‘학교·예술계의 후속 대처나 자정 작용, 가해자 복귀에 대한 생각, 피해자·조력자들에 대한 안전망을 위해 필요한 것’을 질문해서 받은 답변도 공유했다. ‘가해자의 복귀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피해자가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가해자 동정론은 시기상조이다. 가해자가 갖고 있는 힘을 효과적으로 분해하고 막을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조례를 만들면 좋겠다’, ‘예술계는 가해자가 돌아오면 피해자를 다시 만나는 생태계이다. 가해자가 어떤 과정으로 얼마 만에 돌아오는지 기준이 없기 때문에 사례를 모아서 논의를 계속 해나가야 한다’, ‘가해자 복귀도 주변 동료가 시켜준다. 법적 처벌을 받는다고 피해자가 회복된 것은 아니다. 가해자가 철저한 반성의 시간을 겪었는지 성폭력 근절을 위해 노력했는지, 복귀할 때 동료들이 윤리적인 질문을 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전했다. 

 

발제4_손가영 기자_후속 기사를 중심으로 가해 지목자의 현장 복귀 취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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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발제는 ‘공동체 일원으로서 말하기의 의미-무용계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였다. 김윤진 안무가가 활동하는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은 2019년 6월 현대무용가 류모씨 사건을 계기로 위드유라는 소모임을 조직해 연대 활동을 시작했다. 성폭력 사건은 2015년에 있었지만 2019년 6월 최초 보도 되면서 무용인들이 성명서를 발표했고 84개 단체의 지지 서명을 받았다. 위드유는 재판을 돌아가면서 방청하고, 잘못된 의견에 탄원서를 마련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김 안무가는 2020년 8월 18일 징역 2년 실형 선고 이후 ‘사법적 판단 너머, 무용계 현장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질문으로 남았다고 했다. 이후 연구모임을 조직했고 공동체 안에서 이 사건이 나와 관련 있다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고, 공동체 일원으로 어떻게 공감하고 책임감을 갖고 무엇을 할지를 묻는 것이 연구의 핵심 방향이었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위력에 의한 성추행 판결문의 의미를 짚어보면서 참가자들과 공유했다. 가해자는 일개 강사로 무용계에서 위력을 행사할 위치가 아니라고 했지만 판결문에서는 ‘대학 강사와 개인 교습자의 중첩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를 보호·감독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충분히 인정된다’고 했다. 특히 ‘피고인의 영향력은 무용계 전체가 아닌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는 대목을 강조했다. 김 안무가는 “무용계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사적 관계로 개별 사건화하면서 피해자의 사생활 음해와 2차 가해를 재판 내내 진행했다. 무용계에서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공동체의 책임에서 멀어지려는 사례였다”고 재판 당시 상황을 부연했다. 


한 연대자는 가해자에게 직접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어서 재판 방청을 왔고 ‘함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고 했는데 김 안무가는 이 말을
모두가 가슴에 담기를 바랐다. 남아 있는 질문들은 ‘죄값을 치뤘다고 가해자의 보편적인 인권을 주장할 수 있는가’, ‘피해자의 회복은 개인의 몫인가’ 등이었다. 끝으로 공동체라면 갈등과 논쟁의 과정을 겪어야 다음 단계로 갈수 있으므로, 계속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이와 관련해서 지혜를 모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발제5_김윤진 안무가_공동체 일원으로서 말하기의 의미_무용계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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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미투 운동 이후 예술현장의 분위기 및 이어지는 고민들’의 김기일 연극연출가는 서두에 발제를 준비하며 ‘돌아오는 가해자’라는 주제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임을 인지했다고 밝혔다. “요즘 만나고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은 ‘안전지대’라는 감각이 생겼다. 미투 당시 침묵하거나 책임 회피한 것으로 여겨진 사람과는 몇 년째 거리감을 유지 중이다. 그 이후 그 사람들과 그 집단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해 잘 모르게 되었다.” 그동안 본인의 위계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나이를 먹었고, 연출을 하고 있고, 몇몇 심의에도 참여하고 있다. 오랜 시간 같이 지내면서 편해진 동료에게 제가 폭력을 저지르면 팀원들이 바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까. 한 때 안전지대에 속한다고 믿은 동료가 얼마 전 위계를 이용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었다. 위계를 이용해 사례비를 횡령한 동료도 있었다. 안전지대라는 인식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가해자는 이미 많이 돌아와 있으며, 창작자가 현장에서 체감하는 고민과 갈등, 가해자가 복귀 가능한 지금의 환경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을 통해 형량을 치른 가해자의 활동 복귀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계속 말을 해서 다시는 가해를 저지르지 못하게 신호를 보내는 일 밖에 할 수 없다. 가해자를 배제했다고 연극계라는 공동체가 나아지는 것이 아니다. 성폭력과 위계폭력이 벌어지기 어려운 환경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 연출가가 최근 겪은 일은 ‘돌아오는 가해자’에 대한 정보와 환경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사례였다. 위계 폭력 등으로 문제가 되었던 연극인이 지원 사업에 신청했는데 사업 진행자들이 문제를 제기해 지원 기관에서 잘못을 인정하라는 조건을 제시하자 스스로 신청을 철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거나 관련 정보가 없었으면 문제없이 사업에 참여했을 것이다. 가해자의 반성과 사과가 선행되지 않으면 복귀할 수 없다는 인식과 환경이 작동한 결과”라고 부연했다.

발제6_김기일 연출가_미투 운동 이후 예술현장의 분위기 및 이어지는 고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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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아닌 공동체, 시스템에서 같이 해결해야

 

6명의 발제가 끝난 후 참가 신청 시 접수된 질문이 공유되었다. ‘예술인 권리보장법 시행에 앞서 광역문화재단의 성폭력 가해자 규제 지침이 있는지 궁금하다’,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등의 소송을 하고 아무 문제없이 활동한다. 가해자에게 규제를 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무엇인가’, ‘법적 처벌 외에 공소시효가 지난 가해자나 기관에서 묵인·조작·회유 등으로 동조한 이들을 제재하는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와 같은 구체적인 질문이 들어왔다. 

먼저 김윤진 안무가는 “연대활동을 할 때는 ‘너희가 왜 나서냐’고 했고 다른 성폭력 사건이 있으면 ‘왜 아무것도 안 하냐’고 하더라.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협소한 관계가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다 일말의 책임이 있다”면서 ‘나는 돌아오는 가해자와 같이 일할 수 있는가, 그 사람의 공연을 볼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해봐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기일 연출가는 “제 사례는 문제가 되면 공동체에서 같이 책임지겠다는 구성원간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결국 가해자의 복귀도 개인이 아닌 연대와 공동체 문제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현장 참가자 중 한 명은 채팅창을 통해 “미투 당사자로 발언한 이후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 이상, 코로나 상황이 겹치면서 예술 활동과 경제 활동이 2년간 주춤했다. 다른 예술가와 연대도 못해 와서 복귀가 힘들고 막연하게 느껴진다. 다른 피해자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면서 미투 이후 삶을 살아가고 회복하기 위한 연대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남겼다.

이에 김수희 연출가는 자신의 경험을 참가자들과 나누었다. 편한 시간은 아니었고 주변에서 관련 질문을 많이 받으면서 딜레마에도 빠졌지만 이후 상담을 받고 여러 관련 행사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연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순간순간 버티기 힘들 때 집중할 일을 계속 찾다 보니 청년예술청 사업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아마 자신만의 상황과 방식이 있을 것이고, 스스로 안정이 되고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때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연대를 못 하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가 괜찮고 편안하고 건강한지가 가장 중요하다. 현장으로 복귀하고 싶으면 주변 동료와 상의해볼 수 있다.”

김화용 작가는 “연대는 쉽지 않다. 긴급한 상황에서 연대하고, 창작 활동을 포기하면서까지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희생한 동료 예술가들이 있다. 그 에너지가 많은 도움은 되었지만 과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다음은 시스템이 따라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근 대학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언급하며 “이름 있고 활동이 많은 가해자의 경우 기관과의 결합이 분명 있을 것이다. 기관의 주체들이 이에 대해 조사하고 피해자가 존재하는 곳을 찾을 수 있다”면서 조력해줄 수 있는 것은 예술가가 아니라 시스템임을 강조했다.

3차 토론회는 전강희 진행자의 ‘앞으로 각자의 분야, 활동하는 판에서 자리가 많이 만들어지고 이야기가 공유되면 좋겠다’는 마무리 인사와 서로에게 보내는 박수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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