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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E:넌 무엇을?/[예술공동체] 난상: 공동체는 SELF입니다

[김수희] 버티자 버티는 거야 버티고 보는 거야

2022. 12. 19.

글. 김수희(문화예술계 내 성평등·탈위계 문화조성 사업 기획운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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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탈위계 문화조성 플랫폼 NONE>이 올해도 올라갔고 잘 마쳤다. 
지원사업에 최소한의 평가를 거쳐 단체에 지원했던 작년 방식과는 달리 올해는 <NONE:넌> 사업에 관심이 있는 개개인의 선착순 자원을 받아 함께 논의하면서 사업을 계획해 꾸려가고 예산을 분배했다. 

이 점이 가장 큰 변화라 생각된다. 
올해 사업을 설계할 때 작년의 사업을 통해 확장이라는 부분에 좀 더 집중해보자는 의견에 전원 동의하였고,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논의했다. 완성된 형태의 프로젝트에 지원할 경우 예산집행과 진행의 안정성은 보장되지만, 문화예술계 전체로의 확산이 시도되고 있는지는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전체 성원은 논의를 거쳐 총 네 팀으로 나뉘었고 나는 그 중 예술공동체의 멘토가 되었다. 우선은 주제 중심이었기 때문에 이 팀이 어떤 형태의 사업 모델을 제시할지 구체적이지 않았다. 나머지 세 명의 운영기획단도 무작위로 팀에 배정되어 각각의 멘토가 되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이, 멘토의 역할 자체가 사업에서 배제되거나 탈락하는 지원자가 없도록 최소한의 울타리만 제시하고 추가로 청년예술청과 지원단체 사이 소통의 통로가 되는 안내자 정도였기 때문이다. 

예술공동체 팀은 이들의 담론을 발표형 공연으로 만드는 형식으로 가닥이 잡혀갔다. 
극장과 유사한 환경에서 리허설을 진행했고, 포스터를 만들어 홍보하였다. 최종 발표 대본을 편집해 희곡집으로 묶은 후 공유하는 계획을 세웠다. 여러 번의 Zoom 화상 회의와 연습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어쩔 수 없는 개인적 사정으로 구성원 한 명의 참여가 어려운 상황도 발생하기도 했지만, 구성과 예산을 다시 정리하며 준비를 이어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공연은 무대 위 참여자들이 미리 꼭지만 정해놓고 즉흥적인 논의를 펼치는 동시에, 사전에 받은 관객 질문에서 새로운 질의를 파생시키고 답변을 끌어내는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로 이루어졌다. 

 

대화는 이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했다. 
관객의 질문과 의견도 중간중간 들어왔다. 

‘진행은 자연스럽게, 발언은 자유롭게’라는 목적을 두고 기획한 공연이므로 이는 당연한 모양새였으며, 공연의 마침도 숙제를 남겨놓은 채 우선 안녕을 고했다. 그런데 그 뒤가 참 희한했다. 분명 공연은 마쳤는데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나왔던 질문에 대한 못다 한 의견이 객석 사이를 오갔다. 관객들은 쉬 일어나지 않았고 참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공간 사용 시간이 다 해서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정리했다. 또 공연 이후 구성원들과 가진 최종 합평회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대본을 편집하기 위해 구성원들 모두 기꺼이 많은 시간을 들였고, 공연에서 나온 담론을 살피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견들이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발적, 자율적 공연은 흐름이 조금은 매끄럽지 못할 수 있지만, 이 공연은 구성의 완성도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기에 무대와 객석에 자리한 사람들이 생각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는가를 더 중요하게 보았으면 한다. 만약 연출자 역할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기도 했지만, 예술공동체 팀이 지향하는 바와 공연의 목표를 상기해보면 이 역시 중요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실은 연극 형태를 빌린 예술공동체 팀의 작업과 연극 연출가인 나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어서 나도 모르게 불쑥 첨언할까 봐 무척이나 조심했다. 또 나의 경력과 경험으로 섣불리 판단하여 프로젝트 내용을 재단하거나 먼저 정리하려 들지 않도록 경계했다. 이 마음이 예술공동체 팀 구성원에게 어떻게 다가갔을지는 알 수는 없지만, 이 글을 통해서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나눠 좋았다고 전하고 싶다.

 

개개인이 모여 논의를 이어 나가기 위해 
토론 환경의 안전망을 만들고, 위계에서 벗어난 구조를 설계해나간다면
과정 안에서 이미 확산이 이뤄질 수 있지 않겠나 상상하였다!


개개인이 만나 의견을 조율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번 플랫폼 형태는 거버넌스 활동의 장점을 살린 최적의 모델이 아니었나 자체 평가한다. 각 분야에서 활동 중인 개인 예술인 및 활동가들이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 설계를 위해 의견을 내고 조율하는 과정을 가졌다. 또 행정과 정책 요소를 반영하면서 수정을 거듭하였으며, 최종적으로 사업을 실행한 바로 이 자체가 거버넌스 형태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논의가 길어지고, 합의를 이루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위계를 멀리하면서 개개인을 존중하는 상황 속에서도 충분히 사업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경험했다. 소중한 기억이다. 

내년의 사업은 또 어떻게 설계될까. 
사업 예산은 줄어들고 내 외부의 거버넌스에 대한 인식 또한 제자리걸음이지만 그래도 기대가 된다. 나아가 안전하며 평등한 문화 예술계 문화가 자연스럽게 조성되어 안착하면서 <NONE:넌>과 같은 사업 형태가 없이도 우리 모두 자유롭게 각자의 예술 활동을 펼쳐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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