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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E:넌 무엇을?/[미정] 놀이: 뒤로가기 그리고 사라지기

[정혜진] 문화예술계 내 위계 없는 환경 조성을 위한 삼겹살 굽기의 가능성

2022. 12. 18.

글. 정혜진(문화예술계 내 성평등·탈위계 문화조성 사업 기획운영단)

 

이번 기록에 흔히 볼 수 있는 어느 한 편의 논문 제목 같은 부제를 달아 보았다. 그사이 툭 튀어나온 삼겹살이라는 단어에는 직간접적으로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글을 쓰기에 앞서 가장 먼저 떠오른 이 단어를 시작으로 한해를 지켜본 커뮤니티이자 프로젝트를 기록해 보기로 했다. 바로 2022년 <성평등·탈위계 문화조성 플랫폼 NONE>의 커뮤니티 중 하나인 미정 팀에 대한 이야기다. 

2022년 8월 주제를 중심으로 자발적 커뮤니티 생성을 하는 과정에서 무엇도 결정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모든 것을 미결에 두기를 목표로 한 사업의 회의는 어떻게 진행될까? 우선 위계에 대한 실체를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미정 팀은 위계란 모든 종류의 경쟁에서 촉발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에는 여러 논쟁적 반론이 더해질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곳에 모인 이들은 지원사업의 선정, 평가, 경력, 유명세, 권력 등 경쟁의 뒤를 잇따르는 것들로부터 새로운 탈출구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했다.

모든 것들을 미정에 둔 채 구성원들의 개별적 이야기와 관심사를 바탕에 둔 작업의 방향성을 존중하며 공통분모를 찾아내 주제를 잇고 다듬어 나갔다. 그렇게 놀이, 죽음, 탈 생산 등의 핵심 주제를 확정했다. 음악, 무용, 연극, 시각, 기획 등 다양한 장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모여 각자의 방법으로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생산한 것들을 최종적으로 전시의 형태로 풀어냈다. 각자의 과정은 미정의 구성원들 사이 위계 없이 놀아보기 위한 행위들로 구성되었다. 뜨개질하기, 노들섬 가기, 하늘 보기, 차 마시기, 그리고 계획에는 삼겹살 굽기가 포함되었다.

공공 기금으로 삼겹살을 나누어 먹는다는 계획을 들었을 때 
걱정이 앞섰던 것을 고백한다. 

 

사업 안에서 커뮤니티의 단순 친목 도모를 위한 과도한 식음료 비용, 숙박비, 교통비 등의 사용을 지양하기로 협의한 상태에서 위계를 타파하는 방안으로 놀이를 제시하는 프로그램의 운영 방향성을 어디까지 열어두고 해석해야 할지 고민이 앞섰다. 프로그램의 내용적 실험이 아닌 공공 기금 사용의 실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고민은 거버넌스 형태로 운영하는 사업안에서 행정 그리고 예술가의 간극을 체험하게 했다. 

사실 삼겹살이라는 음식은 위계적인 상황의 사적 행위를 위한 매개체처럼 인식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위계와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생각거리들을 제공한다.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이 불가한 상태에서 다수가 모여 하나의 음식을 조리와 취식까지 함께 하는 문화의 전유물이자 회식을 위한 장소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특히 그 과정 안에는 소위 그 자리의 막내가 고기를 굽는 문화가 특징적이며, 역시나 하나의 음식을 나누어 먹는 형태인 피자와는 또 다르게 으슥한 뒷골목의 비공식적 모임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존재한다. 실제로 특수한 사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문화예술 창작형 공공사업에서 식사비와 다과비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먹는 행위 안에는 지극히 사적 명목이 내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정 팀에게 이 음식들은 예술 활동의 명백한 ‘재료’였다. 이는 결과물을 보았을 때 비로소 선명해졌다. 그러나 이것이 다른 사업에서도 이해받을 수 있었을까? 혹은 다시 돌아가서 먹고 노는 것은 일이, 예술이 될 수 있을까? 경쟁 없는 일은 비효율적이며 발전적이지 않은 걸까?


11월 <NONE WEEK>에 선보인 미정의 전시에서는 죽음과 놀이의 본질에 대한 사뭇 진지한 접근으로 시작하여, 생산을 위한 뜨개질이 아닌 행위를 위한 뜨개질을 할 수 있으며, 또한 운이 좋으면 호스트를 만나 차 한 잔을 얻어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전시는 잠시 머리를 비우고 자리에 앉아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고, 음악을 들으며 차 한 잔의 여유와 대화를 제안한다. 전체를 위해 우회하지 않은 각각의 관심사는 충분히 발산되었고, 그것이 흩어지지 않고 잘 아울러진 데에는 과정에서의 충분한 대화와 심정적 연결 그리고 개인의 섬세함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미정은 <놀이: 뒤로가기 그리고 사라지기>를 통해 
생업 안에서 발생하는 위계의 모든 논쟁적 사안을 초탈하는 방법으로 
인간의 본질로 돌아가 ‘먹고 마시고 서로 사랑하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미정의 성평등·탈위계 문화조성을 위한 프로젝트는 하나의 메시지이며, 그것이 예술의 역할이라는 넓은 의미까지 돌아보게 한다. 결국 문화예술계 현장의 실질적 환경 개선을 위한 연구, 조사, 분석, 정책, 법령 등의 직접 해결이 가능해지려면 그 밑바탕의 인식에서 문화로 이어지는 많은 이의 필요와 공감을 사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혹은 생각지 못한 전혀 새로운 방향의 아이디어와 다방면의 해결책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예술적 방법론이 던져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절한 규제와 명확한 처벌 이전에 어쩌면 인본적 믿음과 신뢰가 부재한 것은 아닐까. 언젠가 기관과 예술가 간의, 사회와 예술가 간의, 그리고 예술가와 예술가 간의 MOU(양해각서), ‘당사자 간의 상황을 이해한다’라고 하는 것이 체결되어서 많은 현장의 기저에 깔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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