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NE:넌 왜?/조직 내 위계를 고민하는 [에르네스또]

[Re] 관계의 그물망

2022. 11. 10.

000

제 주변의 동료, 지인들에게 올 불이익이 걱정되어 이렇게 익명으로 저를 소개합니다.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 발생하는 관계에 관심이 많고,

개별적 주체들이 이어가는 관계가 보편적 네트워크로 확장되는 과정을 즐깁니다.

글이 담고 있는 다양한 현장 사례들이 올곧게 이해받고 수용되는 언젠가,

제 이름을 밝히고 소개할 수 있길 바랍니다.

 


청년 예술인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오로지 창작에만 생계를 기대기 어려운 현실에서 기획, 교육 등의 유관한 업무도 수행합니다. 또는 확장된 개인의 관심을 바탕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기도 하지요. 청년, 예술인, 기획자 등의 정체성을 가진 ‘누군가’로 활동하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이슈 가운데 특히 젠더와 위계 문제에 쉽게 노출이 됩니다. 여전히 존재하는 도제식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젠더와 위계 문제는 지극히 사적 영역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예술가로 하여금 노출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듭니다. 반면 중앙, 광역, 기초단위 등 중간 지원조직 또는 문화예술 관련한 기타 기관 및 조직에 발을 담군 예술인 혹은 기획자들은 공적이되 사적인 영역에 얽혀 서로를 향한 관계의 그물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몇 몇이 모여 하나둘 이야기를 꺼내 보았고,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님을 분명하게 인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문제가 축소되고, 감춰짐을 알게 되었고 해결에 앞서 사례를 모아보았습니다. 이 글은 수집된 사례를 통해 구조와 관계 안에서 나타나는 성평등과 탈위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고자 합니다.

 

* 아래 사례는 가공 및 편집되었음을 밝힙니다. 

 

# 사례 1. “동네 아줌마들 회의비 10만원씩 받으려고 이거 오는거 아냐?”

어떤 회의 자리에 들은 말입니다. 지역활동가를 부르는 표현부터 그들을 폄하하는 발언까지 완벽하게 성평등, 탈위계에 어긋나는 사례였어요. 지역활동가들은 이 지역 기관에서 그들을 ‘동네 아줌마’라 지칭하는 것을 알까요? 하지만 저는 배석한 일개 보조 스텝에 불과했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차피 저는 일주일만 일하면 되는 상황이었으니 정식으로 어딘가에 말할 필요도 못 느꼈죠. 하지만 뒤돌아 보면 그 회의를 보조 하던 ‘나’의 존재는 잊혀져 있었다는 사실은 저에게 작은 생채기를 남겼어요. 그리고 지역 활동가를 향한 저의 애정에도 마찬가지의 상흔이 남았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존중. 많이 어려운 일인가요?

 

# 사례 2. “간이침대사줄게. 잠자고 그냥 바로 여기서 출근할래? 근데… 나는 00씨한테 그렇게까지 일하길 기대한건 아니었어.

그러니까, 00씨는 선생님이 아니야. 담임은 나고, 자기는 반장같은거지 ^^ 알고 있지? ”

생각보다 규모가 커진 사업때문에 제 보직이 갑자기 바뀌었고 매일 야근을 해야 했어요.

상사가 야근하는 제가 불쌍하다며 사무실에 간이침대를 놔준다고 하더라고요.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걸까요?

  1. 자신의 일을 나에게 전부 미루는 그/그녀?
  2. 다음 해 계약 연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당하다는 목소리 내길 포기한 나?
  3. 이미 주 52시간을 넘긴지 오래지만, 직원을 더 뽑지 않고 현재 있는 인원이 알아서 일하길 바라는 이 조직?
  4. 그리고 이런 모욕적인 표현들이 무디게 다가오기 시작한 나.

# 사례 3. “00님이 예민한거 아니에요? 왜 그런 것까지 목소리를 내려고 해요?”

같이 활동하는 동료가 저한테 했던 말이에요. 그 말을 들은 순간 혼란스러웠어요. ‘어? 내가 예민한건가?’

사이버 스토킹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공개된 정보라는 이유로 누군가 저의 사적인 영역까지 침범하기 시작했는데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야 하는 걸까요? 제가 담대하지 못한 건가요? 같은 성별의 가진 사람이 예민한 것 아니냐고 말할 정도라면, 제가 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있는 건가요?

 

# 사례 4. “그 사람이 00보다 나이 많은 거 알고 있었잖아.”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 발생했어요. 경험많은 좋은 동료인 00님과 평등한 관계로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 목소리를 내면 계속 말을 막거나 화를 냈어요. 그 사람은 저보다 활동을 오래했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관과도 좋은 관계였죠. 그런 사실때문에 처음에는 참으려고 했는데, 결국 크게 싸웠어요. 저도 화를 낸 잘못이 있긴 했죠. 하지만 아닌 걸 맞다고 하기 힘들었고 더는 참을 수 없었어요. 그 건으로 결국 저는 다른 동료들에게 질책받았어요. 어차피 그/그녀는 너보다 나이가 많은데 굳이 왜 거기에 대응하냐고. 그냥 참으라고요. 우리는 근데 상하관계로 만난 게 아니잖아요. 저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이번 원고를 위해 상당히 많은 이들로부터 사례를 수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례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표현은 이러합니다.

“신고해봤자 내부고발자라는 소리나 듣지 않을까?”
“말하면 피해받을거야. 나는 실제로 피해입은 경험도 있어.”
“이게 조금만 남을 배려한다면 되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야. 사실상 다같이 피해를 보는 거잖아.”

사례자들로부터 이러한 목소리가 공통적으로 발화된다는 것은 어쩌면 지금 우리가 함께하는 이 생태계가 건강하지 않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에서 끊어낼 수 있는 것일까요.구조적 문제가 몇 몇 개인의 희생이나 (강요되었을지 모를) 원만한 합의를 통해 종결 지을 수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당사자인 개인이 피해받지 않고 끝낼 수 있는 문제인지도요. 이미 문제제기의 목소리를 내었다가 또 다른 피해를 입었다는 증언 역시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술 현장은 생각보다 각박하고, 잔인하다는 것을 이미 청년 예술인, 기획자, 매개자들은 경험했을 터 입니다. 그래서 문제의 요인으로 낙인 찍히지 않기 위해서 혹은 이미 척박한 환경이 더 이상 메마르지 않길 바라며 입을 다무는 선택을 하죠. 개인은 위계에 대응함으로써 관계를 망치고 그 영향으로 하고자 하는 업무에서 배제될까 하는 두려움도 큽니다. 과업에서 얻는 성취감도 우리 안에 분명히 존재하고 이를 추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우리 현장이 이만큼 성장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다는 것을 알기에 구조적 위계를 대응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상당수 존재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술 현장의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여러분은 또 어떤 젠더 또는 위계 문제를 겪으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 관계의 그물망, 더 나아가 개개인이 엮어낸 욕망의 그물망을 다시 짤 수 있는 동력 또는 작은 힌트를 얻기 위해서요!

 

여러분이 겪은 위계와 성차별 사례가 있다면, 2022년 12월 10일까지 아래 링크에서 공유해주세요. 공유 의사를 밝혀주신 사례는 본문처럼 익명으로 편집, 수정해서 2022년 12월 중 이 페이지 하단에 공유하겠습니다. 위계 상황에서 저, 그리고 제 동료, 친구, 선배, 후배와 같은 고민을 이어가는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 https://forms.gle/BkbW6QsxynkhFCSM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