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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E:넌 왜?/나이 위계를 고민하는 [류하]

[Re] 너 몇 살이야?

2022. 11. 2.

 윤용아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 교수)

 

지위나 계층 따위의 등급

위계의 사전적 의미다. 우리는 이 의미를 신중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지위나 계층으로 등급을 나눈다고? 그렇다면 이 단어는 지극히 계급주의적이며 시대의 흐름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거기에 ‘질서’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더욱더 가관이다. 왜냐하면 위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위계의 사전적 의미에 나이는 아예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우리는 대한민국의 무수한 논쟁의 끝에 “너 몇 살이야?”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위계는 계급주의가 팽배하던 시기에 지역마다 방귀 좀 뀐다는 군상들이 만들어낸 단어가 아닐까 추측한다. 그러면 거기에 나이는 왜 꼈을까? 모두 한번 생각해보자. 계급주의 사회에서 계급을 갖추지 못했던 사람들은 계급층이 행사하는 각양각색의 만행과 추행에 배알은 꼬이나 대다수 표현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고리타분한 유교 사상을 근거로 한 ‘나이’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너 몇 살이야?” 이게 논쟁의 핵심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위계, 특히 나이에 관련된 위계는 버릴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 무조건 버려야 한다. 그런데 그냥 버리면 절대 안 된다. 우리는 흔히 위계와 예의를 매우 혼동하는 것 같다. 위계는 절대 예의가 아니며 위계를 버리며 예의까지 같이 버리면 우리 사회는 인간끼리의 존중이 무너진, 소위 개판이 될 것이다. 동시대에 그런 개판을 자주 목격하며 나는 마음이 무척 착잡하다. 위계를 버리며 예의와 존중까지 버렸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나이가 지긋하신 택시 기사분과 택배 오토바이를 모는 20대의 청년이 서로 충돌할 뻔하다 다행히 충돌은 면했다. “어린 놈의 새끼가 어디다 대고….” “넌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었냐, xx놈아?” 지난주 캠퍼스에서 목격했던 사건이고 겉으로 보면 아들과 아버지 같았던 두 남자가 서로에게 뱉었던 무수한 말 중 핵심적인 것들이었다. 그야말로 나이 위계의 극이었으며 완벽한 예의 실종이었다.

우리는 모두 계급층이 행사하는 각양각색의 만행과 추행에 배알은 꼬이나 표현을 하지 못하는 대다수가 아닌, 거기에 맞서는 소수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거기에 맞서는 과정에서 예의와 존중을 갖추는 것은 2022년도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필수적인 요소다. 그 소수가 대다수가 되었을 때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비로소 진보적인 사회, 겉이 아닌 내면이 성숙한 사회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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