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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E:넌 무엇?/2022년 <넌>의 새 모습

<넌>의 새 모습: 현장의 움직임 확산에서 임의의 공동체 실험으로

2022. 8. 14.
현장의 움직임 확산에서 임의의 공동체 실험으로

글. 정혜진(문화예술계 내 성평등·탈위계 문화조성 사업 기획운영단)

성평등·탈위계 문화조성, 두 번째 걸음

문화예술계 내 성평등하고 탈위계한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2021년 첫걸음을 뗀 <문화예술계 내 성평등·탈위계 문화조성 사업>이 올해로 2회를 맞이했습니다. 성평등·탈위계라는 중대한 문제의식은 2016년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을 시작으로 사회 전반에 쏘아 올려져 현재에 이르기까지 끝나지 않은 의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는 급변하는 사회 현상 속에서 더욱더 다층적이고 유기적인 현상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분절되고 대립하는 관계 속에서 ‘성평등’과 ‘탈위계’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문제를 야기하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크고 부담스러운 단어에 짓눌려 마주하기를 그만두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올해 초 사업은 ‘안전한 창작 환경 조성 사업’ 등 새로운 사업명에 대한 논의가 오가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 무거운 이름을 마저 짊어지고 가기로 했습니다. 성평등과 탈위계가 당연한 환경이 될 때까지 어렵고 민감한 사안들을 우회하지 않겠다는 결심의 일환으로요. 지진하고 꾸준한 움직임이 문화로 자리 잡기까지 본 사업이 일회성으로 휘발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무겁고도 경쾌한 두 번째 걸음을 뗐습니다. 

2020년 청년자율예산제를 통해 사업이 시작되었고, 같은 해 Y 작가 사건을 발단으로 자발적으로 모인 서울문화재단 내 거버넌스 주체 모임 중 11인의 예술인이 운영단을 구성하여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사업은 지원사업, 워크숍, 토론회, 아카이빙의 큰 갈래로 운영되었습니다. 워크숍, 토론회, 아카이빙은 11인의 운영단이 분업하여 기획·운영하였고, 지원사업의 형태로 진행된 <커뮤니티 형 지원사업 NONE: 넌>은 현장에서 성평등·탈위계와 관련한 활동을 하고 있고, 활동하기를 원하는 예술인 및 단체와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청년자율예산제를 통해서가 아닌 서울문화재단 내 자체 사업으로 배정되면서 2021년 총 1억 9천만 원이었던 사업비가 2022년 9천 8백만 원으로 물리적으로 축소되면서 이와 더불어 내부적으로 사업을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필연적인 변화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2022년의 변화들

1. 거버넌스 민간 주체 중심에서 참여자 중심으로, 실행 주체의 확대

지난 <커뮤니티 형 지원사업 NONE: 넌>에서 실험했던 ‘예산분배 토론회’는 지원사업에서 넘어설 수 없었던 수직적 위계 구조를 만드는 예산이라는 요소를 참여자들 간의 소통을 통해 민주적으로 분배하고 구성해 본 경험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다음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예산뿐만 아니라 전체 사업의 기획·운영의 주체를 운영단에서 참여자로 확대하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기조에는 지난해 진행한 <커뮤니티 형 지원사업 NONE: 넌>이 있었습니다. 운영단이 직접 기획하지 않아도 이미 다채로운 기획들이 개개인에게 내재하여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업명 또한 지원사업명이었던 <NONE: 넌>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2. ‘플랫폼’을 이용하는 ‘커뮤니티’

여기에 새로운 커뮤니티 생성의 가능성에 대한 실험이 더해졌습니다. 본격적으로 커뮤니티에 집중하여 이미 조직된 단체가 아닌 각각의 개인이 새롭게 사업안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기로 했습니다. 커뮤니티, 네트워크, 소통, 연결이라는 익숙한 요소들이 피상적인 과정이 되기 쉬움을 인정하며 때론 귀찮게, 때론 지긋지긋하게 제대로 관계 맺어 보자며 팔을 걷어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나아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역할로써 최소한의 인원으로 기획운영단을 4인으로 구성하여 탄력적으로 실질적인 진행과 운영을 담당하도록 했습니다. 사업은 그저 ‘플랫폼’으로서 역할하고 사업을 이끌고 나아가는 중심은 ‘커뮤니티’에 두었습니다. 그렇게 ‘성평등·탈위계 문화조성 플랫폼’이라는 지붕 아래 모인 주체들은 각자의 관심 주제를 중심으로 모이고, 다양한 교집합을 만들어보면서, 하나의 가치를 향해 조율하는 경험을 함께합니다.

 

3. 30개의 이념, 30개의 언어, 30개의 가치

30인의 개인이 모였고, 그 안에서 4개의 그룹이 형성되어 사업이라는 그림을 함께 그려 나가고 있습니다. 30인은 인권과 다양성에 관한 강의를 들은 후에 신청 자격을 부여 받았으며, 3회의 서로를 알아가는 소모임을 가지고, 4회 내외의 자율 모임, 그리고 2회의 예산분배 토론회를 거쳐 11월 통합발표 및 확산 주간에 기획을 펼쳐 더 많은 예술가를 만납니다. 

2022년 성평등·탈위계 문화조성 플랫폼 <NONE: 넌>은 임의(어떤 일정한 제한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것)의 만남으로 지연, 학연, 경력, 성별, 나이 등이 아닌 방식으로 공동체를 구성합니다. 이는 각자의 이념을 공유하고,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배우며 공동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No one normal ever. 그 누구도 평범하지 않으며, 단 하나의 정상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30가지의 각기 다른 세계가 모여 만들어낼 불협화음의 하모니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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